‘이동찬 자신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대법원 3부). ‘이○○(전 KT&G 부사장)가 자신의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수사 등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영진 전 KT&G 사장에게 4000만 원을 줬다고)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에서 같은 날(6월 23일) 거의 똑같은 논리로 중요한 뇌물사건의 피의자에 대해 잇달아 무죄가 선고되고, 이에 검찰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양측이 감정싸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수사나 재판을 받는 피의자가 선처를 받기 위해 검찰이 잡고 싶어하는 ‘거물’에 관해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를 노골적으로 불신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뇌물 공여의 시기, 장소, 방법, 자금의 원천 등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고 합리적인데도, 다만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허위 진술 가능성이 있다며 진술을 배척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대법원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법조로비 의혹에 연루된 브로커 이동찬 씨로부터 금괴 밀수 조직의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 인천공항 세관 공무원에게 원심을 뒤집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제가 된 금괴 밀수 사건 규모가 시가 약 334억 원에 이르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은데도 검찰이 이동찬을 불기소처분한 점에 비춰 보면 이 씨가 선처를 바라고 허위 진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검찰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동찬은 “집행유예나 보석을 받아 주겠다”며 정운호 씨로부터 50억 원을 받아냈던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브로커로, 최 변호사와 판사들과의 유착관계에 대해 유의미한 증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인데, 이번 법원의 판결로 그 가능성이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정운호 씨 관련 수사 및 재판에서 나올 이동찬의 입을 미리 봉쇄해 버린 판결이라는 좀 자극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단호하다. 이번 판결은 이동찬이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과 거래한 정황이 있어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론 이동찬의 진술이 객관적인 정황에 비춰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라는 것이다.
진술이 거의 유일한 증거인 뇌물 사건에서 이번처럼 법원과 검찰이 범죄 피의자 증언의 신빙성을 다투는 일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차제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처럼 내부증언자 불기소처분 및 형벌감면제를 도입하는 등 명확한 근거 규정을 만들어 갈등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 피의자가 감경, 불기소 등 자신에게 돌아올 구체적인 이익이 없는데 자신의 상사나 지인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진술을 자발적으로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이 거악(巨惡)을 잡기 위해 작은 범죄자와 거래하는 건 용인해도 되지 않겠나 싶다. 다만, 그 과정에서 허위의 진술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할 것이다.
sdgim@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