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은 이제 보은이나 인정이 아니라 ‘시스템’이 됐다. 그래서 무섭다. 낙하지점의 사정 따위는 물론이고, 일단 내려보내기로 한 이상 낙하산을 멘 자의 의지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논공행상에 따라 내려보낼 인물이 추려지고, 빈 공간이 생기면 무차별 낙하다.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건 ‘내려보내는 손’이다.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인사 중 대표적인 것이 자니윤(한국명 윤종승·80). 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다. 그가 임기만료 한 달여를 앞둔 지난 6월 말 사표를 냈다. 지난주 초에는 윤 씨의 아내가 사무실을 찾아와 짐을 다 챙겨갔다. 지난 4월 뇌출혈로 쓰러진 윤 씨는 퇴원 후 석 달째 여주와 남양주의 요양원에 머물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의사소통도 하고 보행보조기 없이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예외규정을 적용받아 미국시민권을 유지하고 있는 윤 씨는 조만간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을 일구고 금의환향했던 원로 대중 연예인이 이제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2년 2개월 전쯤으로 돌아가 보자. 장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집무실. 윤 씨가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마주 앉았다.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재외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낙하산을 멘 윤 씨는 관광공사 상임감사로 내정된 상태. 이날 만남에서 유 장관은 상임감사 대신 ‘고문’ 자리를 제안했다. 고문은 매일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출연도 제한받지 않는다고 했다. 원주 이전을 앞둔 관광공사로의 출퇴근이 불편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윤 씨는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자리’라며 반겼다.
유 장관은 이런 사실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요약하자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유 장관은 돌연 면직됐고 윤 씨의 상임감사 임명은 강행됐다. 윤 씨가 출근 첫날 관광공사 노조위원장에게 건넨 첫 마디가 ‘내가 원해서 온 자리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낙하산을 메고 있는 이’와 그 ‘낙하산이 내려가는 곳’과의 합의와 상관없이 주도권은 ‘낙하산을 떨구는 손’이 갖고 있었다. 낙하산은 ‘시스템’이었고 가동된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상임감사 임명 후 윤 씨가 느꼈을 압박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출근이나 제대로 하느냐’는 물음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나왔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몸가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평생 무대에 섰던 연예인에게 이런 상황은 적잖이 부담스러웠으리라. 예상대로 윤 씨는 감사로서의 능력도 신통치 않았다. 급기야 2015년 정부 공공기관 직무수행실적 평가에서 낙제점인 최하등급을 받았다. 그 결과를 통보받기도 전에 윤 씨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제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다. 공직 대신 평생 무대를 지키며 연예인으로 남아 있었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모쪼록 전 관광공사 상임감사가 아닌, 연예인 ‘자니윤’의 완쾌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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