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회정책학

제20대 국회에서 새 국회의장이 된 정세균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향후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여·야 의원들은 저마다 개헌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밝히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살펴보면 현행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정부 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논리까지 다양하다. 실제로 어떠한 합의가 가능할지 회의적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다양한 개헌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시각은 헌법 조문을 고쳐서 제도를 바꾸면 우리 정치가 개선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과연 헌법 제도만 바꾸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이 분산되고, 의회가 정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게 될까?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이로써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인가? 정치권의 개헌론자들은 법과 공식적 제도가 바뀌면 정치가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바뀌지 않고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헌법 조문에 아무리 좋은 제도를 적어 놓더라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수밖에 없다. 제도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개원한 지 한 달 조금 지난 20대 국회에서 보여주는 국회의원의 행태는 과거에 비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구시대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와 장관에게 윽박지르듯 목소리를 높이는 의원의 모습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권위주의 행태의 전형이다. 구체적인 자료와 정교한 정책 논리로 장관을 추궁하기를 기대한 것은 헛된 꿈이었을 뿐이다. 동료 의원끼리 야유와 욕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논하는 곳이라 말하기 창피스럽다. 더욱이, 의원 사무실의 보좌진에 가족과 친지를 임명해 곤경에 처한 국회의원들을 보면 처량한 마음까지도 든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선거자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한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 국회의원을 보며 구태(舊態) 정치에 좌절감마저 느낀다.

후진적인 정치 행태는 중앙정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6일에는 경남 의령군의회 의장단 선거에서 어느 의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거액을 배상한다는 혈서를 썼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창녕군의회에서도 의장선거를 둘러싸고 금품이 오갔다는 폭로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연이어 전남 여수경찰서도 여수시의회 의장선거에서 금품 거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 가까이에서 생활정치로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할 지방의회가 이렇게 추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권위주의, 부패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런 정치인들의 구태(舊態)를 그대로 두고 개헌만 한다고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이 분산되고, 국회나 지방의회가 정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것으로 기대할 순 없다. 헌법을 고치자는 논의에 앞서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규범과 헌법 정신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장관과 관료들도 국회의원들에게 떳떳하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도록, 원칙대로 투명하게 정책에 임했는지 스스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고함 치는 국회의원은 부패했거나 부실한 역량을 가진 공무원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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