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만나기 힘들겠지만 잘해 봐.”
임창훈이 웃기만 했으므로 윤준호가 말을 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한마디 하지. 서동수 씨한테 과연 한민족의 장래를 맡겨도 될까?”
임창훈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이었는데 윤준호의 목소리에 열기가 올랐다.
“요즘 동남아, 유럽, 미국에서까지 보수, 근본도 불투명한 속물들이 대중들의 깡통 인기를 기반으로 득세하는데 결과는 좋지 않을 거야.”
“…….”
“그래. 우리도 남북한이 통일된 대한연방이 번영하는 것이 꿈이야. 이제 우리 꿈은 사라졌지만 말이야.”
임창훈이 민족당에서 공생당의 창당발기인으로 뛰쳐나갔을 때 윤준호는 ‘배신자’ ‘반역자’라고까지 악담을 퍼부었다. 둘은 같은 연배인데다 생각과 수준이 비슷했고 친했기 때문이다. 윤준호는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임창훈의 전화를 받고 나온 상황이다. 임창훈은 ‘위로주’를 한잔 산다고만 했다. 역삼동 골목 안의 한식당 방 안이다. 방이 서너 개밖에 없는 작은 식당이었지만 이곳은 예약 손님만 받는다. 집 안이 조용했으므로 심호흡을 한 윤준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속물은 속물로 끝나는 거야. 사람들 눈에 씌었던 콩깍지는 곧 벗겨져. 지금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속물들이 신선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더 실망하게 된다고.”
그때 방문이 열렸으므로 윤준호가 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음 순간 숨을 들이켰다. 서동수가 들어서고 있다. 그 뒤를 비서실장 유병선이 따른다. 임창훈이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따라 일어서던 윤준호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소주잔이 엎어졌다. 그러나 잔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그때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내가 윤 총무님 만나려고 임 의원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아.”
말문이 막힌 윤준호가 외마디 소리만 내더니 서동수가 내민 손을 엉겁결에 잡았다. 허리가 25도쯤 굽혀진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 서동수는 남한에서 대통령 조수만 이상의 권위와 권세를 가진 인물이다. 물이 경사를 따라 흐르듯이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곧 방 안에 좌석이 급하게 만들어졌다. 상석에 앉았던 윤준호가 서둘러 앞쪽 임창훈 옆으로 옮겨갔고 유병선은 옆쪽에 앉았다. 주인 여자가 들어와 재빠르게 술잔과 수저를 바꿔놓고는 물러갔다. 방 안에 넷이 되었을 때 서동수가 유병선이 따라주는 소주잔을 들면서 윤준호를 보았다.
“이번 남북한 연방준비위원회에 윤 의원 같은 인재가 필요해요. 국가를 위해서 일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숨만 들이켠 윤준호의 시선을 받으면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속물은 큰 틀만 만들어 놓고 기다릴 겁니다. 그 틀의 알맹이를 채울 정예는 바로 윤 의원 같은 분들이지요.”
한입에 소주를 삼킨 서동수가 윤준호에게 잔을 내밀었다.
“나는 인재는 좌건 우건, 동이건 서건, 남이건 북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윤준호가 받은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을 비운 속물하고 같이 일해 봅시다. 대한연방을 위해서 말이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