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정치부장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 재창출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할 정치적 빚도 없고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정치적 탄압의 표적이 될 비리도 없으니 남은 임기 동안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기는 데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핵심인사의 전언은 전혀 다르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성장과 발전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을 안다. 4대 개혁은 한계 돌파를 위한 체력 다지기이고, 돌파구는 통일이다. 통일 대박론도 이런 관점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통일이 우물 파기라면 조만간 수원(水源)에 닿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차기 정권은 최소한 우물 파기를 중단하거나 오히려 흙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은 기본적으로 ‘살부(殺父)’의 속성을 지닌다. 전임자를 밟고 일어서야 권력을 취할 수 있고 쟁취한 권력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따라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 탄핵’은 필연적이다. 전임 정권의 핵심 정책일수록 폐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이런 권력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박 대통령의 권력 재창출 의지가 아니라 그 방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의 치열한 후보 경선을 통해 도덕적 약점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함으로써 이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세력까지 흡수하는 확장성을 갖췄다. 미리 ‘살부의 정치’를 한 셈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에게 자신이 했던 방식을 용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 유승민 의원이 제19대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던진 메시지는 박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차기 대선 레이스를 겨냥한 ‘정치적 선언’이기도 했다. 그 선언이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유 의원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배신’이란 규정과 ‘공천 배제’라는 탄압은 당내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도전의식을 꺾어버렸다. 김무성 전 대표 역시 비주류의 수장으로서 박 대통령과 협력과 대립을 오가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함으로써 한때 대선 후보 선두를 유지했으나 공천 막판에 ‘옥새 파동’으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고 대선 후보 지지율도 급락했다. 그 결과 지금 새누리당 내에는 독자적인 비전과 정치영역을 구축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새누리당 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다 광역단체장이 된 이후에야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는 실정이다.

역대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구상은 대권의 향배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든,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친 대통령이든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최소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물며 박 대통령은 여전히 30% 안팎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점지해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다. 현직 대통령이 생각하는 시대정신과, 차기를 노리는 후보의 시대정신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박 대통령이 자신과 정체성이나 코드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기 대통령 부적격자일 수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새누리당 전당대회(8월 9일)는 당권·대권이 분리돼 있긴 하지만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유의미한 후보를 낼 수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다. 세간의 의혹처럼 청와대가 개입해 친박 후보를 밀고 그 후보가 당선돼 당을 ‘박근혜 추수주의’로 몰아간다면 희망이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창조적 비판과 도전’을 선언하는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실망했던 국민들을 다시 돌려세우는 장이 돼야 한다. 오늘로 박 대통령의 임기는 겨우 591일 남았다. 청와대와 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해도 그 성과로 차기 대선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힘든 기간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국정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을 넘어서,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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