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이유는 그가 ‘대작’ 스캔들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적 계약, 즉 사회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합의, 믿음과 신의를 무시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법학회가 경북대 ‘IT와 법 연구소’와 공동으로 15일 개최하는 ‘예술품의 소유권과 저작자의 인격권, 창작과 대작’이란 주제의 학술대회에서는 국내에서 최근 ‘위작·대작’ 논란으로 관심을 끄는 예술과 법의 문제를 다룬다. 조수정(미술사·미술비평 전공)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날 발표할 ‘예술가와 사기꾼: 조영남 ‘대작(代作)’ 사건을 중심으로’에서 ‘대작’ 자체보다 사회적 계약과 구성원의 신의를 파괴한 잘못이 더 위중하다고 비판했다. 미학자 진중권 등이 ‘대작’이 예술 관행의 하나며, 조영남(사진)이 콘셉트만 제공했다면 법적·윤리적 잘못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데 대한 반론이다.
조 교수는 발표문에서 “미술의 역사를 보면, 작가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제작된 작품은 매우 많다”며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고 전제했다. 또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작품 자체의 내부적 요소만으로는 예술작품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라며 “작가가 직접 그리거나 만들지 않은 작품도 있고, 낙서나 쓰레기가 작품으로 변신하기도 하며, 미적 쾌감을 주기는커녕 현기증과 구토를 유발하는 작품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앤디 워홀을 팝아트의 선구자로 부르거나, 바스키아를 사회 비판적 낙서 예술가로 부르는 데 동의하면서도, (화투짝을 그린) 조영남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에 껄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조 교수는 “비록 앤디 워홀이 ‘나는 사기꾼이다’는 폭탄선언을 했지만, 그가 예술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과 작품제작활동이 사회적 계약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이 예술품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암묵적이지만 매우 강력한 여러 층위의 사회적 계약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며 네 가지 층위를 제시했다. 첫째, 적어도 작품 구상을 작가가 해야 하고, 둘째, 조수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 작가는 조수와 계약을 맺어야 하며, 셋째, 작품을 거래시장에 내놓을 때는 작가가 조수의 도움을 빌려 작품을 완성했다면 이를 밝혀야 하고, 넷째, 작가의 스타일 혹은 작품의 예술성과 관련해 그림이 혹은 작가의 활동이 새로운 발상으로서 예술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조영남은)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지 않았고, 스스로 제작하지 않았으며, 그 작품을 만든 조수와 정당한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타인의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판매했으나 이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이에 관한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또한 그의 그림들이 예술사의 흐름에 어떠한 의미를 남긴 것도 아니었다”며 네 가지 조건을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역설적으로, 조영남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우리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담지한 것이기도 하다”며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한국 예술 분야의 한계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