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전국부 부장

서울의 서촌(효자동·옥인동·체부동·누하동 등이 있는 경복궁 서쪽 지역)은 요즘 ‘뜨는 동네’다. 예전의 서촌은 그리 부유한 동네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 ‘한옥 바람’을 타고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엄청난 자본의 힘은 주민의 삶의 모습과 정체성을 확 바꿔놓았다. 철물점이나 세탁소, 조그만 신발가게, 동네 구멍가게 등 지역상권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화려하고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 고급 빵집이 생겨났다. 매일 같이 동네 골목을 가득 채우는 관광객도 이전에는 못 보던 광경이다. 주민에게 별 필요 없는 가게가 동네에 들어오는 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만들어내는 상징적 현상 중 하나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다. “런던에 거주하는 노동자계급은 중산계급에게 차례로 침략당한다. 마구간을 개조해 만든 허름한 집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주인 손에 들어가 고급스럽고 비싼 주택으로 거듭난다. 어떤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며, 결국 기존 노동자계급 주민은 전부 집에서 쫓겨나고 지역의 색채 또한 완전히 바뀌고 만다.” 글라스가 묘사한 1964년 런던의 모습이다. 이는 미국 뉴욕에서도 목격됐던 모습이다.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강 건너편에 자리한 브루클린은 한동안 저소득층이 사는 곳으로 통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맨해튼과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새로운 명소가 생겨나고,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건물에 세 들어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과 건물주이자 연예인인 ‘리쌍’ 간에 벌어진 법적 공방전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극단적 폐해를 보여준다. 건물을 비워달라는 임대인과 상권을 개척한 점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임차인 간의 대립, 여기에 동조 세력까지 가세해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지난 7일 경비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한 강제집행 시도 이후엔 ‘임차인이 계약기간 만료 이후에도 나가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한다’며 ‘임차인의 을질’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어떤 이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주는 기회가 된다. 반면 다른 어떤 이에겐 기회의 상실이 되고, 공동체 해체의 단초를 제공한다.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은 상권의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홍대 앞과 연남동, 이태원 경리단길 등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던 지역들은 기존 상인과 예술인들이 떠나간 뒤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즐비하다. 마침 서울시가 7월부터 서촌 전 구역에 프랜차이즈 카페나 제과점 등이 들어서는 것을 전면 제한하는 내용의 ‘경복궁 서측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을 시행하겠다고 지난 5월 발표해 주목받았다. 행정자치부는 무너지는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지역(마을) 공동체 복원 사업’을 구상 중이다. 과거 이명박정부의 뉴타운 사업이 대기업을 앞세운 ‘상업적 개발’ 모델이라면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행자부의 시도는 정부와 기업, 마을 주민이 공동 참여해 원하는 공동체 모델을 선택하는 ‘멀티형 개발’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택에 따라선 상극이 아닌 상생형 도심 개발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ys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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