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1919~1987)의 책 ‘고통에 반대하며’(북인더갭)가 이번 주에 나왔습니다.

레비는 기억과 증언의 작가이지요.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참여하다가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가 11개월 뒤에 기적적으로 생환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이다’는 아우슈비츠 제3 수용소에서 보낸 체험과 관찰을 기록한 책입니다. ‘휴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 그의 다른 저작들도 아우슈비츠의 기억과 연결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도 언제나 생에 대한 긍정과 반짝이는 유머를 잃지 않았던 작가로 유명합니다.

이번 주에 나온 ‘고통에 반대하며’는 그가 1964년부터 1984년까지 20년간 주로 일간지 ‘스탐파’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들을 묶은 것으로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두 해 전인 1985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레비의 전작들이 어떤 식으로든 수용소의 삶과 연결돼 있는 것과 다르게 이 책은 그가 일상 속에서 보고, 듣고,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레비의 다른 책들과는 좀 다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드문드문 내비치던 유머와 성찰, 따뜻한 추억과 생기있는 관찰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더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딱정벌레, 나비 같은 작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생각, 집에 대한 추억, 또 1984년에 처음 산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경험담까지 풀어냅니다. 화학자가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합니다. 그는 “두 문화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의의 인간들이 협력함으로써 서로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과학에 작가의 시각을, 문학에 과학자의 시각을 부여했다”고 말합니다. 최근 일고 있는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 과학과 인문의 융합 시도에 좋은 모범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타자의 존재, 타자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세계가 오직 나의 관념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생각은 유치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타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타자의 영역에 시선을 던집니다. 인간 존재를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간에게 주어진 긴요한 과제는 모든 생명을 오염시키는 실체인 고통의 크기를 할 수 있는 한 줄이는 일이라고 합니다. 레비의 따뜻하고, 예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을 따라가며 글쓰기에 대해, 생명에 대해, 기술 문명에 대해 그리고 타자와 그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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