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저자의 자서전으로 시작한다. 대가족과 함께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과 좌충우돌 자유를 만끽하며 좌파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빠져들던 젊은 시절, 꿈꾸던 작가가 돼서 잇달아 책을 출간하고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의 멋진 삶은 급작스럽게 끝나버린다. 남편과의 이혼, 진보운동에 대한 회의, 식어버린 창작의욕, 시도 때도 없는 환청. 아들이 기숙사행을 택하면서 생전 처음 경험하게 된 독거생활.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된 침묵과 고독. 저자가 풀어놓는 ‘침묵’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지점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얘기하는 침묵이란 그저 ‘말의 부재’만을 뜻하지 않는다. ‘소리가 없다’는 물리적인 상태도 아니다. 외면도, 내면도 모두 고요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고요한 삶.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침묵’이다.
현대사회에서 침묵이란 은연중에 부정적인 상태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침묵이란 ‘의미가 없는’ 시간이 아니라 ‘언어를 벗어난’ 상태라는 것이다. 저자는 언어의 너머에 있는 침묵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침묵할수록 정원을 가꾸거나 시간과 자연을 감상하거나 기도하거나 행복을 느끼거나 하는 경험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고백한다. 침묵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 저자는 침묵이 가진 힘에 대한 탐구에 나섰다. 이런 사유와 탐구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침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짐작하다시피 그 이야기가 향하는 쪽은 ‘인간의 심연’에 관한 것이다.
도시를 떠나 침묵을 찾아 나선 저자는 고립된 공간으로 이주한 뒤의 삶과 그곳에서 보낸 침묵과 사유를 씨줄로 삼고, 월든 호숫가에 칩거하는 ‘신중한 삶’을 택한 미국의 사상가 겸 문학자 헨리 소로, 남극에서 홀로 겨울을 보내기로 결심한 극지 탐험가 리처드 버드, 케임브리지를 떠나 노르웨이의 작은 오두막에 은거한 비트겐슈타인 등 다양한 인물이 경험한 침묵의 삶을 날줄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테면 침묵에 빠져들면서 저자가 자신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산악인 존 크라카워의 단독등정에 대한 체험담을 소개하는 식이다. 저자가 인용한 존 크라카워의 체험담의 한 대목은 이렇다. “혼자였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까지 의미로 가득 찼다.”
저자의 결론은 침묵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의 한 형태라는 것. 침묵이야말로 자유와 자유로운 선택, 내면의 명확성과 힘을 창출하고 자아로부터의 자유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침묵에 대한 사유가 어쩐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불교의 선(禪)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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