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비밀 서재 / 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드느냐다. 영원한 독재를 꿈꾼 나폴레옹이나 최악의 학살자 폴 포트도 책만큼은 사랑했다. 박홍규 교수가 ‘독서독인’에서 ‘궁극의 독재자’라고 표현했던 히틀러의 책에 대한 애착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1만6300권이 넘는 책을 수집했던 장서가였고,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끼고 살았으며 ‘성경’에도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W 라이백의 ‘히틀러의 비밀 서재’는 책이 히틀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전후 히틀러의 책 일부가 미국으로 옮겨져 분산·보관됐는데, 저자는 이 책들의 자취를 좇는 사이사이 히틀러가 애독한 책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다각도로 접근한다.
히틀러가 “개인적인 시간에 몰두했고 공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첫 번째 책은 1915년 서부 전선에서 일개 상등병으로 복무하며 읽은 ‘베틀린’이다. ‘베를린’은 당시 저명한 예술평론가였던 막스 오스보른의 책으로 베를린 건축물을 예술적 관점에서 분석한, 일종의 건축 안내서다. 오스보른은 ‘베를린’에서 베를린의 진부한 19세기 건축 양식 영향을 비판했는데 “외세, 특히 독단적인 헬레니즘을 비굴하게 모방한 건축가들이 수많은 독일 도시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의 영향이 씻겨나간” 독일을 열망한 히틀러에게 오스보른의 ‘베를린’은 이래저래 많은 영감을 준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히틀러의 장서뿐 아니라 저서인 ‘나의 투쟁’ 집필의 전후사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다. 1923년 쿠데타에 실패해 수감자로 전락한 히틀러는 연설을 대신해 격정적인 어조의 자서전, 즉 ‘나의 투쟁’ 집필에 몰두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은 저급한 인간”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의 투쟁만큼은 “자연 세력 간의 투쟁”으로까지 격상시킨다. 이러한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히틀러는 미국의 우생학자 매디슨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유럽 역사의 인종적 기초’ 같은 책을 오랫동안 곁에 두었다. 저자는 책 제목 자체가 불길하다면서 “쇠퇴하고 있는 ‘위대한 인종’에 대해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히틀러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대한 인물에 집착”했던 히틀러는 ‘슐리펜: 독일 국민을 위한 그의 삶과 성격 연구’와 ‘대륙 전쟁 속 미국’을 탐독하며 스스로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했다.
알프레드 그라프 폰 슐리펜은 프로이센 백작 출신의 천재적 전략가로 나라를 위해 지방 하나 정도의 희생은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대륙 전쟁 속 미국’의 스벤 헤딘은 반유대주의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인종 우월 개념을 지지했다. 친독일 인사로 어린 시절부터 히틀러의 영웅이기도 했다.
히틀러의 서재에 놓인 1만6300여 권의 책 중, 마지막을 함께한 것은 흥미롭게도 토머스 칼라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다. ‘영웅숭배론’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때문인지, 히틀러는 칼라일의 영웅 인식을 답습한다. 1924년 쿠데타 관련 재판과 1927년 나치 지도자 연설에서도 칼라일은 등장했으니, 칼라일의 대개 저서는 히틀러의 정치역정과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히틀러의 비밀 서재’는 한 사람의 인생에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탐서가, 애서가, 장서가 모두가 구미를 가질 만한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가, 그것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하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