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지난 11일 문화일보 자료실에서 과거 신문을 찾아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지난 11일 문화일보 자료실에서 과거 신문을 찾아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지난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생하게 겪었던 사건·사고 사례와 과학 수사 기법들을 설명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지난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생하게 겪었던 사건·사고 사례와 과학 수사 기법들을 설명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정치상황·여론에 과학적 진실이 흔들려선 안된다”서중석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드라마 ‘싸인’에서 배우 박신양이 연기했던 법의학자의 실제 모델.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대형 사건·사고를 모두 경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산 증인’. 서중석(59) 전 국과수 원장을 지칭하는 수식어다. 1991년 국과수에 들어가 올해까지 국과수에만 몸담으며 국내 최고 수준의 법의학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6월 30일 국과수 원장에서 퇴임했다. 아직 후임 선정 절차가 끝나지 않아 대한민국 과학 수사의 ‘본산’ 국과수의 수장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 이를 의식한 듯 서 전 원장은 “더 좋은 과학 수사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물러난 사람이 언론에 등장해 후배들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몸을 낮추면서도, 능숙한 말솜씨로 자기 소신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지난 11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서 전 원장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비전문가들이 여론을 호도하는 걸 자주 봤는데, 공직을 떠났으니 이제 법의학 전공자로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에 휩쓸려 과학적 진실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평생을 몸 바친 국과수를 떠나셨는데, 만감이 교차하실 것 같습니다.

“퇴임하고 1주일 정도 여행을 다녔어요. 25년 만에 가장 편안하게 쉬어 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좀 생각해 봤습니다. 그동안은 공직자 신분이라 참아야 했던 게 많아요. 사건이 벌어졌을 때 비전문가들이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경우죠. 법의학 전공자로서, 또 국과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잘못된 정보가 국민에게 전달되는 걸 막아 보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유언비어가 안 생기게 개인방송이라도 만들어서 ‘사실은 이렇습니다’ 같은 타이틀로 설명도 해주고. 더 이상 온 나라가 소모적 정쟁에 휘말리는 일도, ‘여론재판’이 벌어지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혈액형이 B형인데, 국민 여론조사를 했더니 ‘A형 같다’는 답변이 많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혈액형이 A형으로 바뀔 수는 없는 겁니다.”

가볍게 안부를 물었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국과수에서 일하며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유언비어에 몸서리를 치는 것일까.

―잘못된 정보가 나돌아 국과수가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대표적인 게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을 국과수가 확인했을 때였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유 전 회장 시신이 발견되고 국과수로 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어요. 처음에 영안실에서 키가 150㎝로 측정됐습니다. 유 전 회장은 신장이 159㎝니까 다른 사람이란 의혹이 나돌았죠. 국과수로 넘어와서 제가 보니까, 목뼈 3개가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동네 주민이 갖고 있었죠. 목뼈가 처음부터 우리에게 같이 의뢰됐다면 당연히 키 159㎝가 나왔을 겁니다. 또 어떤 치과의사가 ‘시신의 치아가 갈색으로 변한 건 담배를 많이 피운 탓’이라고 하니까, ‘유병언 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며 유 전 회장이 아닌 다른 시신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원래 시신이 부패하면 체액으로 인해 치아가 갈색으로 변하는 게 상식인데도 잘못된 정보가 퍼졌던 거죠. 또 풀밭에 시신이 누워 있었는데 어떻게 잡초가 자랐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게 2014년 7월 한여름이었고, 국과수에서 ‘유 전 회장이 맞다’고 밝히는 데 40일 가까이 걸렸습니다. 40일이면 시골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랍니다. 어쨌든 과학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치아 형태, 치아에 씌운 금 크라운, 손가락 일부 등 여러 가지 과학적 근거로 신원을 확정했습니다. 그해 10월 국과수가 서울에서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을 주최했는데, 그때 유 전 회장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세계 과학자들이 ‘왜 이렇게 쉬운 사건이 한국에서는 문제가 됐느냐’고 묻더군요. 유 전 회장의 사인을 밝히지 못한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니, 살은 다 없어지고 장기도 하나도 안 남았는데 어떻게 사인을 밝힙니까.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으니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은 배제했습니다. 하지만 질병인지 판단하려면 장기를 봐야 하는데, 벌레 때문에 몽땅 훼손돼 있었습니다. 또 목이 없으니까 질식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인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과학이에요.”

―요즘은 여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수사가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국과수에서 동료·후배들이 최선을 다해온 것 중 하나가 감정을 객관화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고, 과학적으로 감정되기 때문에 굉장히 믿을 만한 것입니다. 국과수의 경우 감정 결과의 신뢰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습니다. 또 소위 군사정권 시절 오직 국과수 의사들만이 진실을 이야기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박종철 열사 사건 때 법의학과장이었던 황적준 교수님 같은 분들이 그 험난한 시대에도 지켜온 국과수의 명성을 감히 저희가 어찌 훼손할 수 있겠습니까. 국과수가 돈을 버는 기관도 아니고, 큰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오로지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기개와 자존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양심을 팔아먹었느니 하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처럼 ‘정치적 사건’에 얽힐 때는 더욱 곤란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수용시설에서 사망했을 때, 40대 이하의 젊은 사람이 갑자기 숨졌을 때,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목숨을 잃었을 때, 어린아이가 죽었을 때 등 리스트를 만들어 이런 사례는 반드시 부검하도록 정하면 됩니다. 대통령의 죽음도 규정에 해당 조항이 있으면 절차에 따라 기관에서 검시하면 되는 거죠. 그러면 정치적 사건이 될 일이 없어요. 미국의 경우, 이러이러한 건은 반드시 전문가가 검시하고 부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런 게 없어요. 우리는 형사소송법 222조 1항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검사 개인의 판단으로 부검합니다. 2005년 11월 쌀시장 개방 협상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집에 돌아와 사망한 전용철 농민 사건 때 제가 상당히 코너에 몰린 적이 있습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주장과 들어맞는 결과가 나오면 부검을 잘한 것이고, 그분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의혹 제기가 이어집니다. 국가나 공권력이 잘못했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입장이 곤란해져요. 부검을 할 때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부검팀이 있고, 보조로 판단하는 팀이 있고, 반대 측의 의사도 입회해 부검 과정을 지켜봅니다. 또 모든 과정이 녹화되고 사진도 찍어요. 그런데 어떻게 부검 결과를 지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망자의 편이지 정치인의 편이 아닙니다. 부검을 통해 죽어서도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실을 알려서 세상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범인이 있으면 잡게 해서 망자가 저세상으로 잘 가게 해주는 게 우리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장난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왕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질문 드리겠습니다. 8∼9월에 세월호 인양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배를 물속에서 꺼내고 나면 국과수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전문용어로 ‘미수습자’ 9분이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8가족이죠. 그분들을 위해 배를 샅샅이 수색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해상에서 사람이 죽으면 10% 정도가 행방불명되는데, 다행히 세월호는 구명조끼를 입은 분들이 많아서 그 이하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빨리 유족들에게 시신을 찾아드리는 게 제일 중요한데, 바닷물 속에 오래 있어서 뼈만 남은 시신의 경우 유전자 검출이 쉽지 않습니다. 전력을 다해서 신속하게 유전자를 검출해야 합니다. 우리 경험으로 봐서는 골격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두 번째로는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세월호의 구조 변경이 실제 있었는지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래됐지만 녹화된 CCTV 화면도 분석하고. 사람을 더 많이 태우려고 평형수를 적게 실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런 것도 조사가 이뤄지겠죠. 물론 조사해도 끝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 안에 있는 미수습자는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국과수 원장을 그만두기 전에 미수습자 가족 면담도 하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도 다 갖춰놨습니다. 국과수가 할 일의 준비는 다 해놨습니다.”

―25년 국과수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뭔가요.

“역시 세월호 사건이죠. 그밖에 국과수에서 아직 ‘초짜’였던 1994년에 예전 같으면 사인이 질병으로 치부됐을 사건을 타살로 입증했던 일도 기억납니다. 당시에는 ‘지주막하 출혈’이면 대부분 질병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끊어져 뇌에서 대량 출혈이 생기는 ‘외상성 뇌저부 지주막하 출혈’에 대해 잘 몰랐던 거죠. 그런데 가볍게 뺨을 때리는 정도로도 혈관이 끊어져 사망할 수 있다는 걸 규명했어요. 요즘은 혈관조영술이 있지만, 당시엔 잉크를 넣어 혈관의 찢어진 곳에서 피가 나오는 걸 증명했죠. 대형 재해로는 삼풍백화점 붕괴가 생각납니다. 1995년 6월 29일이었죠. 그때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려던 참이라, 이태원에 짝퉁 골프가방을 사러 갔어요. 그런데 구급차들이 줄지어 강남 쪽으로 가는 거예요.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공중전화로 국과수에 전화를 걸었는데 난리가 났다고 해요. 바로 복귀를 했죠. 그때 첫 시신이 한쪽 발목만 들어왔어요. 차츰 사고 현장에서 시신이 수습되면서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를 겪으면서 국과수의 대형 재해 대응도 체계화됐습니다. 당시에 시신을 넣어두는 이동식 기구를 제가 만들었는데, 세월호 참사 때도 그 기구가 쓰였습니다. 이후에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02년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정말 많은 사건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을 제일 많이 하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만 건을 했다느니 하는 건 과장된 얘기고요. 정확하게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 4000여 건 될 겁니다. 외국에서는 150번 정도 부검하면 ‘많이 했으니 쉬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외국에 나가서 1년에 부검 몇 건 하느냐고 물어보면 ‘400∼500건 한다’고 자랑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우리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풍백화점에서 발목 하나만 남은 경우처럼 시신이 크게 훼손됐을 때 신원 확인은 어떻게 합니까.

“요즘에는 토막살인부터 시작해 불태우거나 놔뒀다가 마른 명태처럼 미라화시키기도 하고, 과거에 비해 시신들의 변화가 너무 다양합니다. 당연히 그에 맞춰 신원을 밝히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유전자 기술이 세계적으로 발전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식별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톱 오브 더 톱(Top of the Top)’입니다.”

―한 명이 한 달에 몇 건 정도 부검을 합니까.

“하루에 한 건 정도로 보면 됩니다. 물론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은 적게 하죠. 하지만 저도 원장으로 있으면서 올해 6개월간 12건을 부검했습니다. 원장이 부검하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부검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복잡한 의료사고나 교통사고를 담당하면 차트가 많이 오는데, 부검의가 사진 작업부터 감정서 작성까지 전부 해야 합니다. 중간중간 경찰 수사도 도와야 하고, 법정에도 나가야 하고. 국과수 원장으로 있을 때 직원들에게 안식월 또는 안식년 제도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국과수의 업무는 부검에 그치지 않는다. 국과수는 6월 2일 이우환 화백 작품 가운데 위조 의혹이 제기된 13점에 대해 진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품끼리는 물감 성분이 유사하고, 디지털 비교 분석 결과 화면의 구도, 점과 선의 방향 등 패턴이 같았지만 경찰이 압수한 13점은 달랐다는 게 위작 판정의 근거였다. 그러나 이 화백은 13점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하며 경찰과 대립하고 있다.

―국과수가 그림 감정도 하던데요. 13점 모두 위작이 맞나요.

“저는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물감 성분 등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비슷한 예로 지난해 10월에 국과수에서 ‘직지심체요절보다 100년 이상 앞선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던 ‘증도가자’에 대해 마이크로 X선 형광 분석, 3차원 금속 컴퓨터단층촬영, 성분 분석 등을 거쳐 활자에 덧씌운 흔적이 있고, 고려 시대 당시 국내에서는 쓰지 않고 중국에서만 쓰던 글씨체가 있다는 것 등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학문적·과학적 사실을 모두 종합해 ‘이것이 진본이라고 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건 때도 국과수가 결정적인 분석을 했죠.

“당시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 사건이 발생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고 ‘광우병 촛불시위’ 등으로 정권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부검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할 수 없이 제가 나섰습니다. 박 씨가 7월 11일 오전 5시 16분,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시간에 북한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것을 증명했죠. 부검해 보니 경험상 조준사격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밤에 짐승이 지나가서 쐈다’고 주장했어요. 고민하다가 당일 아침에 관광객 300명 정도가 박 씨가 숨진 방향으로 해변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300대의 카메라가 촬영한 시간을 표준시로 환원하고, 시간대별로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컴퓨터를 이용해 붙여 넣었습니다. 그 뒤에 확대해 보니 5시 16분에 딱 그 위치에, 배경 뒤에 박 씨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어요. 그때 정말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를 만난 김에 과학 수사의 ABC를 배워 보고 싶어졌다. 영화 속 과학 수사는 어디까지 진짜인지, 한국의 과학 수사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과학 수사를 분야별로 나눠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우선 용어가 정립돼야 하는데. 과학 수사라는 것은 수사를 과학적으로 한다는 뜻이고, 국과수의 분야는 엄밀히 말하면 수사 과학입니다. 과학을 토대로 증거를 제시하고 분석해서 범인을 찾아주는 것이죠. 수사 과학에는 크게 법의학과 법과학이 있습니다. 법과학은 법생화학과 법공학 분야로 나뉩니다. 법공학은 안전사고라든지 화재, 교통사고, 폭발물을 주로 다룹니다. 법생화학은 유전자로 사람을 찾거나 마약 검사, 독극물 검사 등이죠. 사람의 머리카락을 분석해 납 성분이 많으면 어디 출신이라고 판단하는 것 등이 법생화학입니다.”

―국과수에서 감정하는 사건도 시대에 따라 특정한 경향이 있습니까.

“매일 한 건 정도씩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시신이 들어오던 때가 있었죠. 조금 지나면서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또는 노력하다 심근경색이나 뇌출혈로 사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때그때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가는 것이죠. 최근에는 묻지마 살인이나 시신을 심하게 훼손한 살인 사건이 늘고 있습니다. 또 디지털 영상이나 CCTV 화면 분석, 디지털매체 복원, 화면 선명화 작업, 얼굴 인식 등 고도의 법과학적 기법이 활용되는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영화 등을 보면 화면을 확대하면서도 선명하게 만드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로 가능합니까. 확대하면 해상도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

“가능합니다. 별도 프로그램이 있어요. 실제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가 삽에 얻어맞고 물에 빠져 익사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체증된 자료는 너무 흔들려서 화면을 알아볼 수 없었죠. 그걸 300분의 1초 단위로 잘라서, 점을 하나 고정해 놓고 그 위로 올라간 것은 내리고, 아래로 내려간 것은 올려서 선명하게 만듭니다. 이 작업을 통해 삽으로 때리는 장면을 복원해냈죠. 그런 드라마틱한 과학 수사가 현재 국과수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다양한 과학 수사 기법이 나옵니다. 어디까지가 진짜인가요.

“믿을 게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냥 일반 연속극 보는 것처럼 보세요. 일단 과학자는 과학을 하지 수사를 하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법의학자가 권총 차고 범인도 잡고 하는데, 그런 부분은 사실과 달라요. 과학 수사 기법은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긴 하던데, 그래도 ‘뻥’이 있죠. 뼈를 올려놓고 스캔을 하면 화면에 DNA가 쫙 분리돼서 나온다든지 하는 장면은 다 거짓말입니다. 일일이 채취해서 손으로 힘들게 빻아서 기계에 넣어 감정하는데, 드라마에선 그런 과정이 없죠. 그래서 저는 과학 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습니다. 차라리 뉴스를 봅니다.”

―현재의 과학 수사 능력을 뛰어넘는 완전 범죄는 가능할까요. 경찰에서는 ‘해결 못 하는 사건은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대한민국 경찰이나 검찰, 국과수 모두 막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요. 그러나 기관끼리의 협업이 중요합니다. 범죄 현장에서 초기 단계부터 국과수의 전문가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검시 제도 도입 등이 시급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 수사 역량이 세계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법의학, 디지털, 마약, 유전자, 대형 재해 응급 대응 등 분야는 제가 봐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해대교에서 벼락을 맞아서 케이블이 끊어진 사고가 있었죠. 우리는 2주 만에 해결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유럽에서도 있었는데, 해결하는 데 몇 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다만 인력이 너무 부족한 게 흠이죠. 1990년대 중·후반에는 전국에 부검의가 4명뿐일 때도 있었습니다. 다 그만두고 나가서요. 지금은 39명까지 다시 늘어났지만, 턱없이 모자랍니다. 장비도 더 보강해야 합니다. 기계를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행정부에 계신 분들은 예산을 요청하면 ‘지난번에 컴퓨터 사줬는데, 왜 또 사달라고 하느냐’는 식이에요.”

―국과수 직원들이 외국에서 벌어진 큰 사건에서 활약한 사례도 있나요.

“2004년 태국 쓰나미(지진해일) 때는 유전자 분석 기법으로 어느 나라 팀보다 빨리 희생자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 지진 때도 직원을 파견했죠. 지난해 11월 라오스에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이 살해됐을 때도 현지 경찰은 사인을 급성 심장마비로 추정했는데, 국과수 부검 결과 ‘타인에 의한 질식사’로 결론 났고 결국 범인이 잡혔습니다.”

―25년 동안 일한 직장을 그만두셨는데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이십니까.

“국과수 직원들이 60세에 퇴직하고 나면, 이들이 가진 과학 수사 역량이 사장됩니다. 국과수 퇴직자들을 모아 비영리재단을 만들려고 생각 중입니다. 가능하면 국과수나 행정자치부, 대법원 등의 인증을 받아 민사 사건에서 서민들이 저렴하게 전문적인 감정 서비스를 받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국가에서 가르쳐 줘서 갈고닦은 실력이니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수사 요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제 슬로건이 ‘호민(護民)’과 ‘조판(助判)’입니다. 국민을 보호하고, 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을 돕는 게 수사 과학의 역할입니다. 수사관들이 주목을 받아야지, 우리가 주인공이 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과학적 사실만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 나가는 과학자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김성훈 차장(사회부)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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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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