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힘을 사용하던 국제관계에서 법에 기반한 국제사회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일국 내에서의 요청에 머물던 법치가, 국제법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려는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중국도 근대화를 달성해 가면서 스스로 ‘의법치국(依法治國)’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타국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6월 25일 중국과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베이징에서 ‘국제법 진작을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을 통해 양국은 국제법 원칙의 완전한 이행을 천명하고, 상호 존중의 기반 위에서 의무와 책임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나아가 적용 가능한 국제법에 따라 스스로 인정하는 분쟁 해결 수단이나 제도를 통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임도 적고 있다. 이중 기준의 적용을 배제하고, 일반적으로 수락된 국제법 원칙과 규칙의 성실한 이행, 국제법에 기반하지 않은 일방적 강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도 선언 속에 분명히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선언 채택 후 불과 보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중국 외교부는 남중국해 영유권 및 관할권을 다룬 ‘필리핀·중국 중재 재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언명한 바 있다. 이번 재판은 유엔 해양법 제7부속서에 따라 이뤄진 것이지만, 재판의 진행은 관례에 따라 유엔 기구가 아니라 별도 협약에 의해 설립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이뤄졌다. 7월 12일 필리핀의 완승, 중국의 완패 결정이 내려지자 중국 정부 지도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양 권익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재 결정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언급하고 나섰다.
중국의 주장과는 달리 남중국해의 암초나 간조노출지(low tide elevations) 등은 섬이 아니며, 이곳에 인공 도서나 시설물을 설치하고 그 외부에 9단선(nine-dash line)을 설정한 것은 유엔 해양법협약에 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조그마한 암초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에 방파제를 쌓은 뒤, 이 암초와 시설의 영유권에 기반해 광범한 해역에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한 일본에 대해서는 유엔 해양법협약상의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며 인정할 수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허약하고 허점투성이였던 국제연맹을 대신해 창설된 것으로, 무력 사용을 불법화했다. 나아가 평화를 사랑하고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을 유엔 회원국이 되는 핵심 자격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유엔의 회원국일 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해 우선적인 책임을 가진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국제법 준수와 확보를 위해 대다수의 다른 회원국보다 엄중한 책무를 부담하고 있다.
이번 결정 이후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수호를 위해 결연히 노력할 것과 역사적 기초 및 국제법에 근거해 당사국과 담판·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것임을 밝힌 점에 주목한다. 그들이 수시로 강조하는 ‘의법치국’이 ‘중국의 길’ 위에 있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길’ 위에 있는 국제적인 당위임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더불어 중국이라는 초강대국도 국제법을 매개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모습임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제법을 국익(國益)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시기임을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