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섭 강원대 교수는 굴뚝에 연기 피어오르고 방 안에 온기 가득한 정경을 그리면서 한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차장섭 강원대 교수는 굴뚝에 연기 피어오르고 방 안에 온기 가득한 정경을 그리면서 한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차장섭 교수가 촬영한 경북 안동의 이원영 목사 생가(왼쪽)와 경북 경산 영남대 까치구멍집의 벽면 사진.
차장섭 교수가 촬영한 경북 안동의 이원영 목사 생가(왼쪽)와 경북 경산 영남대 까치구멍집의 벽면 사진.
- 차장섭 교수 ‘한옥의 벽’ 사진전

10년간 전국 400여 고택 담아
기둥·벽체 등 자유로운 면 분할
여백의 美 쓸쓸하지 않고 ‘풍요’


대들보, 문틀, 마루, 서까래, 문지방 어느 것 하나 곧고 똑바른 것이 없다. 대부분 비뚤비뚤하다. 흰 벽에 공간을 나누는 기둥과 나무틀. 그리고 크기가 다른 여러 문을 대충대충 굵은 붓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다가가 보면 얼기설기 엮은 것 같아도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시야가 막힌 ‘벽’이 아니라 생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그림’ 같아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그러면서 왠지 눈도 편안하다.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인 차장섭(58) 강원대 교수는 10여 년에 걸쳐 전국의 내로라하는 400여 고택을 직접 답사하며 사진으로 전통가옥의 벽면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한옥의 벽’(열화당)이란 사진집으로 최근 펴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사진전도 열고 있다.

책에는 48개 가옥을 촬영한 85점의 작품이 수록돼 있으며 전시장에는 그중 36점이 걸려 있다.

“한국 가족사 연구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전국에 산재한 종갓집을 찾아다녔죠. 인문학적 관점에서 종가의 역사나 건축구조, 문화 등을 연구하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그 같은 과정에서 전통가옥의 벽에 드러난 조형미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됐습니다.”

전시 개막일인 13일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난 차 교수는 한옥의 벽에서 발견한 특징을 ‘비대칭’과 ‘자유로운 면 분할’ 그리고 ‘여백의 미와 단순미’ 등 크게 3가지로 정리해 설명했다. 차 교수에 따르면 한옥의 벽에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벽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벽면의 분할도 자유분방하다. 분할된 2차원 공간에 자리 잡은 문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다.

또 한옥에서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 공백과는 구분된다. 아무런 꾸밈 없는 흰 벽이지만 쓸쓸하지 않고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언제나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단순한 흑과 백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모든 색을 한옥의 벽이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 준다. 색을 배합할 때 물감을 더해가면 흑이 되고, 또 빛을 모아가면 백이 된다. 현란하지 않고 은은하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것도 그처럼 색을 썼기 때문이다.

“한옥의 벽면은 자유스러운 면 분할로 아름다운 한 폭의 추상화가 됩니다.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의 추상이 치밀하게 재고 따져서 정교하게 작도해낸 것이라면 한옥 벽면의 추상은 기둥을 세우고 벽체를 만들고 문을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서양미술의 기하학적 추상과는 대조적으로 한옥의 벽면은 따뜻함이 넘쳐나는 휴머니즘적 추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김환기(1913∼1974)에서 출발해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정창섭 등으로 이어지며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적 추상화인 ‘단색화’와 ‘한옥의 벽’이 무관치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서구의 모노크롬화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적 감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차 교수의 사진전은 지난 2011년 강릉 선교장(중요 민속자료 제5호)의 사계를 담은 사진집 ‘선교장’을 펴낼 당시 가졌던 전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10여 년 전 선교장을 촬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예술 세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가 한옥 촬영에 매달리는 것은 미적 조형의 세계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촬영을 위해 찾아간 고택의 3분의 2가 빈집이에요.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호남의 한 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된 후에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문화재에서 해제됐는데 참 안타까워요. 그래서 기록을 위해 서둘러 촬영하는 것인지 몰라요. 고택을 단순히 옛사람들의 주거 공간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당대 사람들의 문화가 담겨 있어요. 정부 당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옥의 벽’ 사진전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19일 오전까지 계속된 뒤 종로구 창성동 온그라운드지상소(8월 3∼23일),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8월 29일∼9월 20일), 강릉여성문화센터(9월 23∼29일)로 이어진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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