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군.”
소주잔을 든 장성호가 말하자 조문수가 시선을 들었다. 옆쪽 벽에 걸린 TV에 민족당 원내총무 윤준호가 나왔다. 윤준호는 며칠 전 연방준비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돼 정치권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민족당은 배신자라고 성토하고 제명할 분위기였는데 오늘 TV 인터뷰에 나온 것이다. 장성호와 조문수도 그 인터뷰 시간에 맞춰 돼지껍질 식당에 왔다. 술 마시면서 정치인을 안주로 씹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앵커와 윤준호가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 조문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철새 같은 놈들. 아마 서동수가 연방대통령이 됐을 때 감투 하나 준다고 약속했겠지. 배신자.”
장성호는 맞장구치지 않았다. 뻔했기 때문이다. 아마 시청자 100명 중 99명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때 앵커가 물었다.
“서동수 후보가 직접 요청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윤 의원께서는 민족당의 중진이며 서 후보의 공생당과는 전혀 다른 이념과 철학을 갖고 계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융화가 될 것 같습니까?”
“그래서 가는 겁니다.”
어깨를 편 윤준호가 앵커를 똑바로 보았다.
“서 후보께서도 그걸 바라신 것이고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서 후보는 남이건 북이건, 동서, 좌우를 가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간단한 말에 공감한 겁니다.”
“그렇습니까?”
여전히 앵커는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옆 좌석에서 사내 하나가 ‘지랄하네’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10개쯤 되는 돼지껍질 식당의 테이블이 조금 조용해졌다. 장성호와 조문수는 잠자코 시선만 준다.
그때 윤준호가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이제 남북한 대통합의 시기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남북은 물론 동서, 좌우의 대립을 모두 포용하면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 후보가 우선 저를 영입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되는군.”
마침내 장성호가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조문수가 장성호를 쏘아보았다.
“저건 배신이 아니야.”
“그럼 뭐냐?”
조문수가 물었을 때 윤준호의 목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우리는 너무 경직돼 있어요. 이제 곧 북한 출신 국방부 장관이, 보훈처장이 임명될 수도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단 말입니다. 민족당 출신의 연방준비위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사고의 틀을 깨야 합니다.”
조문수가 뻥한 표정으로 TV를 보았고 윤준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 후보는 저를 시범으로 내놓으면서 국민 여러분께 새로운 사고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작일 뿐입니다.”
그때 장성호가 이 사이로 말했다.
“서동수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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