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한국 경제는 부동산에 기대어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 소비, 투자(건설 기성 및 수주 포함) 등의 지표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국세수입 실적을 보면 부동산 활황의 효과는 더욱 도드라진다. 올 1∼5월 국세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9조 원 더 걷혔는데, 늘어난 액수를 살펴보면 소득세 5조6000억 원,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각각 5조5000억 원이었다. 올 1∼5월 더 걷힌 소득세에는 근로소득세나 종합소득세 증가분도 있지만, 부동산 거래 확산에 따른 양도소득세 증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경환 경제팀 시절 꺼내 든 부동산 규제 완화와 사상 최대의 유동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취임 직후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는 등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행정고시 22회)다운 ‘올드 보이’ 스타일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었다.

부동산 규제 완화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였다. 현재 기준금리는 1.25%로 사상 최저인데,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더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돈 퍼붓기’에 한몫 거들고 나선 것은 마찬가지다. 올해까지 박근혜정부 들어 3번째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시중에 돈을 풀고 있다.

통화 및 재정 정책의 결과로 시중에 풀린 돈과 단기부동 자금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하면, 앞으로도 매월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보자. 오랫동안 기름칠을 해주지 않던 기계에 가끔 윤활유를 뿌려주면 기계는 매끄럽고 빠르게 돌아간다. 그러나 기름칠을 많이 한 상태에서 윤활유를 붓고, 또 부으면 기계가 잘 돌아가기는커녕 연결 부위가 떡처럼 엉켜 들러붙게 된다.

통화에서 이런 현상은 유통 속도로 현실화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통화량(M2)으로 나눈 통화유통속도는 1990년까지만 해도 1.51이었지만,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0.88로 1 밑으로 떨어진 뒤, 2009년 이후에는 0.7∼0.8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통화유통속도는 0.7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중에 풀린 돈이 매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데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곤두박질치는 이유는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칠이 과한 상황에서 기계에 윤활유를 계속 쳐봐야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돈의 효과가 잘 안 나타난다는 뜻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외부에서 충격이 올 경우 과도하게 풀린 돈은 경제에 심각한 악재(惡材)로 돌변한다. 사상 최대의 통화량과 사상 최저의 금리는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호황을 불러오고는 있지만, 그만큼 큰 리스크(위험)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특히 한은은 어쩌면 사상 최악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haedong@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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