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내 금융시장에 ‘메기효과’

시공간 제약없어 고정비용 절감
ICT연계 자산운용 등 확장가능

시중銀도 모바일 플랫폼 설치
新금융서비스 경쟁 촉진시켜

인터넷 은행 안착 2~3년 걸려
‘킬러 콘텐츠’ 갖춰야 지속 성장


본격 출범도 안 한 인터넷 전문은행이 벌써부터 국내 금융시장에 이른바 ‘메기효과(catfish effect)’를 일으키고 있다. 메기효과란 미꾸라지 어항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기를 잃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를 기업경영에 적용한 표현이다. K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11월 예비인가를 받으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메기’의 등장으로 꿈틀대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범이 가까워지자 시중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모바일 전문 플랫폼을 출시하는 등 ‘새로운 적’과 싸우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 도입에 대해 수차례 “금융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고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 간 융합을 통해 기존에 볼 수 없던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출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 ‘메기’가 필요한 이유는 국내 금융업의 낮은 경쟁력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의 본인가가 마무리되면 지난 1992년 이후 24년 만에 신생 은행이 등장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 구조조정과 은행 간 인수·합병(M&A)으로 은행 수는 26개에서 현재 12개로 대폭 줄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산업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은행 간 상품 및 서비스는 유사성이 높아지고 차별화·혁신 유인은 점차 줄어들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2015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25위지만, ‘금융시장 성숙도’는 87위에 그치고 있다. ‘대출 접근성’은 119위,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은 99위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현금인출기(ATM) 등을 통해 ‘사이버 점포’ 운영이 가능한 시대지만 점포 중심의 우리나라 은행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접근성이 높은 비싼 땅에 지점을 열고 고액 연봉자로 구성된 인력을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금융위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은행원 평균 연봉 비율은 한국이 203%로 미국(101%), 일본(146%), 영국(183%) 등보다 높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영업이익 대비 판매관리비(CIR) 비중은 2014년 55.0%로 2010년 41.0%, 2012년 47.6%에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은 이러한 전통 은행의 약점으로부터 나온다. 모바일 환경과 핀테크(Fintech·금융+기술)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은행은 운영 비용을 줄인 만큼 금융 소비자들에게 시중은행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고,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안효조 K뱅크 대표는 “인터넷은행은 인건비, 지점 운영비가 시중은행의 100분의 1 수준이기 때문에 CIR를 30∼35%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며 “이렇게 절감된 비용을 가지고 예금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행이 서민금융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중금리 대출이 대표적이다. K뱅크의 경우 연 5∼6%대 중금리 상품을 계획하고 있다. 무점포·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간 등급(4∼6등급) 신용자에게도 10% 안팎의 중금리로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이들은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해 2금융권에서 20% 안팎의 고금리로 대출받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의 중금리 대출 시장 진출로 경쟁이 활발해지면 은행권의 저금리 상품과 저축은행·대부업체의 고금리 상품의 간극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것)이 줄면서 각종 수수료 인상에 나선 시중은행과 달리 인터넷은행은 금융 소비자들에게 훨씬 낮은 수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K뱅크가 준비하고 있는 ‘더 저렴한, 계좌 to 계좌 직불 결제’는 고객과 가맹점의 계좌를 직접 연결, 중개 수수료를 최소화한다는 강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A 음식점에서 3만 원어치 음식을 먹은 B 씨가 스마트폰으로 K뱅크 간편 결제를 하면, B 씨의 계좌에서 바로 A 음식점 주인 계좌로 3만 원이 송금되는 방식이다. 현재 음식점 등 카드 가맹점들은 규모에 따라 카드 결제액의 최대 2.5%의 수수료를 카드사 등에 지급하고 있다. K뱅크 관계자는 “현재 카드사가 받는 수수료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는 “인터넷은행이 고정비용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시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한 점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출 사각지대인 중금리 시장을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연계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자산운용업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금융업계가 인터넷은행의 출범으로부터 받는 위기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시중은행은 부랴부랴 인터넷은행과 유사한 모바일뱅크를 출시하고, 중금리 대출 시장에도 발을 내밀고 있다. 고객에게 다양한 포인트 혜택을 제공하는 ‘통합 멤버십’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충성 고객들을 잡아두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반면 성공적인 안착이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K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이 ‘모바일화’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은행이 ‘킬러 콘텐츠’를 내놓지 못한다면 고객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플랫폼 개선에 나선 기존 은행들이 대규모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터넷은행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인터넷은행이 성과를 내면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ICT 등 연관 업종의 성장을 함께 견인할 것”이라면서도 “시중은행과의 경쟁을 피하기 어렵고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 도입에 대비한 유사 서비스를 진행할 경우 고유의 영역을 지켜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는 한국 경제의 잠재적 ‘폭탄’으로 지적되는 가계부채를 늘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윤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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