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3김(金)이 지배하던 카리스마 시대에서 정치를 배웠다. 38세 때인 1981년 민한당 소속으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참여하면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가 됐다. YS는 그의 첫 주군이다. 한나라당에서 사무총장과 대표를 지냈고 2002년 대선 패배 후엔 ‘차떼기’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2007년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면서 정치인생 두 번째 주군을 맞게 됐고 친박(친박근혜)계의 중심이 됐다. 18대 총선이 치러진 2008년 친이(친이명박)계의 ‘공천 학살’에 맞서 ‘친박연대’를 결성했고 당시 예상을 뒤엎으면서 14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당선 뒤 ‘공천헌금’ 건으로 다시 감옥에 갔지만 오뚝이처럼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친박이란 끈 때문이었다.
계파 간 당권 싸움이 숨 가빴던 지난 19일 서 의원은 새누리당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당권은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35년간 정치를 하면서 8선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동안 정치판은 많이 변했다. 비신화화(非神話化)의 시대에, 어쩌면 이번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치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20일 오후 국회에서 서 의원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왜 그랬나.
“단 한 번도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의원님들이 찾아오고 헌정회 선배님들도 그렇고 나보고 짐을 지라는 요구가 많아서 장고를 했다. 그러나 결국 이건 젊은 세대가 하는 게 맞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불출마는 이미 지난주에 최종 결심했다.”
―결정하고 나니까 어떤가.
“홀가분하다. 당내 화합을 위해 큰형으로서 맡은 바를 해야 하는데 나를 정쟁의 중심에 세워놓고 매도한 게 제일 두려웠다. 앞으론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되겠다. 이제 품격 있는 후배들이 나와서 현재의 정권과 미래의 권력이 화합하고 치유하도록 할 때 이 당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 (전) 대표 지역에 김성회 전 의원이 출마하지 못하게 친박 핵심들이 막았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돼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된 건가.
“김성회 씨 스스로 내 지역구(경기 화성갑)가 아니라 신설 지역구인 (화성)병으로 가길 원했다. 그렇게 결정하고는 갑자기 내가 있는 갑으로 와서 예비후보 등록을 해버렸다. 그러니까 윤상현 의원 등이 전화해서 상의를 한 거다. 평소에 윤 의원 등과 잘 상의를 하는 편이라고 들었다. 병으로 가기로 했다가 왜 굳이 갑으로 오려고 하느냐 그런 얘기를 나눈 거다. 그건 공천개입이 아니다. 동료 정치인들 사이에 그런 정도 조언도 못 하나.”
―녹취록만 갖고 보면 친박 핵심들이 지역구 변경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나오니까.
“참 언짢은 게…녹음에 보면 ‘지역구 변경하라는 게 VIP(대통령) 뜻이냐’라고 반복적으로 묻지 않았나. 답변을 유도한 거다. 그걸 녹취했다가 자기 공천이 결국 무산되니까 주변에 터뜨리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전당대회를 앞둔) 이 시점에 터트렸다.”
―김성회 씨가 이번 녹취록을 공개하기 전에 이미 폭로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말인가.
“그럼. 나한테도 전화가 왔었고. 김무성 (전) 대표도 (김 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한테까지 전화를 했다. 한두 군데 전화한 게 아니더라. 그런데 왜 이 시점이냐이다. 이건 음습한 정치 공작이다. 녹취록을 갖고 협박하는 것은 정치판을 초토화하는 거다. 이러면 누구도 선거운동 못 한다. 그러는 거 아니다.”
―대표 불출마 선언했는데도 계파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다 겪었지만 다 우리가 힘을 합해 대통령에 당선시키지 않았나. 의원들 간 친소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계파 갈등 그런 것은 수그러져야 한다. 정권 창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뭐냐. 정권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고 성공할 때 정권도 재창출되는 거다. 현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면 차기 정권 창출도 어렵다.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다.”
―국정의 성공 연장에서 정권 재창출도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인가.
“그게 절대적이다. 현 정부가 성공적으로 국정을 마무리해야 차기 정권 재창출로 간다는 건 정치의 ABC다. 지금은 과거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결국 정권의 안정적인 마무리 이외에는 정권 창출의 길을 열기가 힘들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권 후보라면 품격을 갖춰야 한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상대를 음해하고 그러면 나중에 자기가 그런 꼴 당한다.”
―여당은 청와대에 비판적이면 안 되나. 당·청 관계는 어때야 하나.
“물론 정권이 잘 못 하면 의원들이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거기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몰아가게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국회법 파동 때 그런 식으로 했던 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렇게 청와대와 당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안 된다. 당·청은 서로 신뢰해야 한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들하고 어떤 문제든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당·청이 신뢰가 안 되니까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이제 이 정부 남은 임기가 1년 반이니까 8월 전당대회를 통해서 새 지도부가 나와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병풍’이 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뭔가.
“나 보고 친박계 맏형이라고 하니까 이제 행동으로 보여야지. 화합과 치유, 난 이게 내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한다. 당내 친박과 비박(비박근혜) 간에 또 여와 야 사이의 화합과 치유를 위해, 이 정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내가 해야지.”
―유승민 의원 복당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어떤 메시지가 있었던 걸까.
“잘 모르는 일이지만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복당 결정은 이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투표를 해서 결정이 난 거다. 그럼 그대로 가는 게 맞다. 결단력과 용기, 순발력, 판단력, 그게 리더십이다.”
―요즘 대통령 스타일이 조금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도 이번에 깜짝 놀랐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오래 스탠딩 접견하는 게 쉽지 않다. 옛날엔 불러놓고 단체 사진 한 장 찍으면 그뿐이었다. 이런 전례가 없다. 더 많이 소통하려고 하는 것 같다. 국회의 중요성을 더 느끼시는 것 같이 보인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을까.
“경선 과정이 중요하다. 현 정권과 미래 권력의 간극을 좁히고 당내 화합을 어떻게 얻어 가느냐, 동력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그림, 구도 말인가.
“그렇지. 구도를 잘 그려야 한다. 특히 지역 구도. 지나간 얘기지만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에게 JP(김종필)와 연대하라고 말씀드렸다. 다 약속이 돼 있었다. 그런데 이 총재 주변에서 충청도 50만 표 잡으려다가 젊은 100만 표 잃는다고 말려서 마지막에 못했다. 큰 구도, 이 구도를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했는데…. 그때 내 말씀 들었으면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되는 거였다.”
―‘영남+충청’, 지금도 여전히 여당의 필승 구도인가.
“이번에도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하나.
“확실한 국가관, 용기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품도 갖춰야지.”
―그런 후보군이 보이나 여권에.
“있겠지만 제가 아직은 말씀을 못 드린다. 더 발굴도 해야 하겠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망론이 친박계 내부에서 나오지 않았나. 반 총장 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건가.
“반 총장을 모르진 않지만 내가 뭐 한 번 접촉한 일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크게 관심을 갖고 그러진 않고 있다.”
―일부 비박계에서는 이번 8월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여당이 분열되거나 재편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자멸하는 길로 가는 거다. 지금은 지역 패권을 가진 거목이 없어서 그게 안 된다. 여권 분열, 여권발 재편이라는 것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 얘기다. 결과가 나오면 서로 뭉쳐서 가야지. 그러면 화합하고 계파가 자동적으로 소멸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 계파는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형성된 끈끈한 동지애로 뭉쳐진 계파였지만 지금은 이해관계로 뭉쳐 있어 계파도 아니다. 계파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괴롭다.”
―개헌론에 대한 생각은.
“지금 헌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됐다. 우리 몸에 안 맞는다는 데에 공감한다. 5년 단임제에서는 3년이 지나면 권력 누수가 터져 나온다. 개헌을 논의할 때가 됐다. 우리 정치권같이 정쟁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내각제는 혼란이 예상된다. 국민이 그걸 용인하겠나.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한다. 문제는 개헌론이 한번 시작되면 모든 걸 빨아들이니까 그게 걱정이다. 권력구조 자체도 컨센서스를 이루기 굉장히 어려울 거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내가 실체적인 걸 몰라서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 특히 여당 중진이 얘기하기 좀 간단치 않다.”
―앞으로 꿈은 하반기 국회의장인가.
“내 정치경험을 살려서 우리 정치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정치는 생물이고 대한민국 정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당의 화합, 박근혜 정권의 안정, 여야 간 서로 원만하게 가도록 하는 일을 하려 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권 도전도 할 생각이 있나.
“전혀, 단 1%도 없다. 내 그릇은 내가 잘 안다.”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정리=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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