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가 브랜드 중 하나가 이른바 ‘마약청정국’이다. 마약류의 생산은 물론 유통, 소비가 월등히 적은 클린 국가임을 상징한다. 유엔이 정한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인 국가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인구로 환산하면 전체 마약사범이 최대 1만2000명 미만이어야 한다.
그런데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9174명이던 마약사범이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는 1만1916명에 이르렀다. 청정국 지위 박탈이 목전까지 다가온 셈이다. 적발해서 압수한 마약류의 양도 매년 느는 추세다. 2013년 7만6392g, 2014년 8만7662g, 2015년 9만3591g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보였다. 종류별로는 지난해 기준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속칭 히로뽕)이 5만6580g(60.5%)으로 가장 많고, ‘대마’ 2만4329g(26.0%), ‘신종 향정신성약물’ 1만2432g(13.3%), ‘코카인·헤로인 등’ 250g(0.27%) 순이다. 지난해 적발된 필로폰은 200만 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마약 소비층이 다변화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과거에는 특정 직업군의 중독자 중심 소비였다면, 이제는 회사원·농민·주부·학생 등 일반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밀집 거주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약 유통·소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수사 일선에서는 국내 마약 투약자를 10만 명까지 추산하는 시각도 있다. 몇 해 전 특정 지방의 하수에 잔류한 마약량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적발된 마약 사범보다 실제 투약자가 20배 정도 많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마약류의 직접적인 생산은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 경찰 등 사법 당국의 감시 통제를 벗어난 대규모 대마·아편의 재배 단지가 있기 어렵고, 합성 마약인 필로폰은 제조 과정의 악취로 인해 적발이 쉬운 데다 이미 1990년대에 지속적인 단속으로 밀조 조직이 와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약사범 규제는 밀수입 등을 통한 마약 유통·소비를 근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출입국 물품 및 세관 검역의 강화, 국제적 마약 유통망에 대한 정보 파악과 초국가적 경찰 형사사법 공조 등이 중요시되는 대목이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익명 거래의 용이함이 마약 확산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을 이용해 마약류를 밀수입하는 사건도 꾸준히 늘었다. 2005년 67건이던 것이 2015년 262건으로 10년 새 4배나 증가했다. 사이버상의 밀거래에 대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감시가 요구된다.
마약 범죄의 피해는 단순히 투약자 자신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력 상실에 따른 국가 경제 타격은 물론 사회의 건전성 훼손과 도덕성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나 예방 대책도 처벌 이상으로 중요하다. 전국에 무료 치료 21개 병원이 있으나 배정된 예산이 1억 원도 안 된다고 한다.
마약 조직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남미나 동남아의 일부 국가에 비하면 청정한 편이라며 안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약 범죄는 중독 범죄의 특성상 일정 비율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피라미드 조직처럼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전 국민의 상당 비율이 마약 복용자로 전락한 주요 마약 소비국이 그 실례다. 마약 사범을 늘 있는 범죄 정도로 인식하고 대책에 소홀해선 안 되는 이유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마약 사범 뿌리 뽑기에 범국가적인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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