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그러니까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체조 금메달 유망주 김소영은 훈련 도중 목뼈를 다쳐 전신이 마비됐다. 그 당시 모든 관심은 소영이에게 쏠렸다. 국회의원, 체육관계자, 유명인사들은 소영이를 찾아와 손을 잡고 무슨 일이든 다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잊혀 갔다. 그렇게 대중 속에서 잊힌 소영을 1993년 만났다. 20대 중반을 갓 넘은 친구가 대뜸 “골프장에서 장애인 골프 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소영이와 몇몇 골프장을 다니면서 타진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나마 1996년에 ‘장애인 스키 행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소영이와는 자연스럽게 의남매로 발전했고 그가 하려는 장애인 관련 일을 함께하게 됐다. 허석호 프로와 함께하는 ‘사랑의 버디 행진 기금 조성’, 서원밸리 그린콘서트 ‘장애인 휠체어 성금 모금’, 이스트밸리 ‘휠체어 모금 버디행진 기금 조성’, ‘동촌골프장 채리티 행사’ 등 20년 넘게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보름 전 소영이에게 있어 영혼까지 함께 나눌 ‘파란 눈의 천사’ 친구, 제니가 7년 만에 한국을 찾아왔다. 소영이는 국내 장애인들의 처우 개선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상담학을 전공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도 힘든 유학길을 혼자서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1년을 어렵게 공부하다 ‘한국으로 들어갈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푸른 눈의 천사를 만났다. 그가 바로 제니 시멘스다. 가족도 하기 힘든데 제니는 소영이의 손과 발이 돼 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졸업 후 바로 학교로 발령이 났는데도 소영을 위해 1년 더 학교에 다녔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친구는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데 있다”고. 그러나 어디 실천하기가 쉬운가. 7년 전 한국에 왔을 때 푸른 눈의 천사는 트레이닝복에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시선은 항상 소영이를 향해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 때도 거동이 불편한 소영을 배려한 것이었을까. “그냥 소영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관광을 극구 사양했단다. 소영이와 제니의 관계처럼 우리 사회도, 가정도 건강해지길 바란다. 특히 남의 잘못만 탓하는 골퍼들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소영을 위해 자신의 1년을 희생할 줄 아는 제니처럼.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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