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생존 위한 변화 시동

“○ ○ 님” 회장 이름 부르고
일방적 의사결정구조 없애
“수평·창의적 문화가 경쟁력”

대한상의, 조직 건강도 조사
‘中上’100개기업 중 23곳뿐
고루한 수직·군대문화 여전

“무조건 서구 방식 도입하면
결국 ‘보여주기’ 그칠 수도”
제도·가치관 모조리 바꿔야


단 2명의 대학원생이 창고에서 시작해 직원 5만 명이 넘는 대기업이 된 구글. ‘HP식 인간존중’이라 불릴 정도로 가치 중심적 경영의 대명사가 된 휴렛팩커드. 기업 업력을 떠나 공통점이 있다면 끊임없는 혁신문화를 창출해 기업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굳건히 다져 왔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 속에서 우리 기업들도 낡고 고루한 문화 토양에서 벗어나 혁신을 추구하고 기업문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활로를 모색하지 않는 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가정, 기업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미칠 저출산의 우울한 현실까지 겹치면서 일·가정을 양립해 새로운 성장 추진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 요체는 기업의 제도, 사고방식, 가치관, 행동스타일에 대한 전환적 접근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화일보는 모두 10회에 걸쳐 경영혁신과 기업문화 쇄신의 중요성 및 시사점, 바람직한 대안 모색의 필요성을 현장의 생생한 사례와 함께 진단한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소셜 플랫폼이란 신시장을 창조한 카카오. 이 회사의 김범수 의장은 사내에서 ‘Brian’, 임지훈 대표는 ‘Jimmy’로 불린다. 영어 호칭은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 분위기를 바로 보여준다. 카카오 관계자는 “의사결정, 토의 과정에서 ‘대표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란 말은 쉽게 꺼내기 힘들지만 ‘Jimmy, 그건 아닌 것 같아요’란 말은 쉽게 할 수 있다”며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구성원 간의 다양한 의견 교환과 소통을 통해 최선의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 가운데 30% 이상인 700명가량이 서서 일을 하는 ‘진풍경’도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웅변한다.

CJ그룹은 이미 지난 2000년 2월부터 임직원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이재현 회장도 ‘이재현 님’으로 불리고 사내보 명칭은 ‘님(NI:M)’이다. CJ그룹 관계자는 “보수적이면서 수직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창의적 사고를 위한 특별한 조치로 고려된 게 호칭의 파괴였다”며 “이제는 그룹의 대표적 조직문화로 뿌리내렸다”고 말했다.

한국 진출 10년 만인 지난해 패션 단일브랜드로서는 최대 규모인 1조1169억 원의 매출을 거둔 글로벌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인 유니클로. 유니클로 한국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2014년 말에 3개월간의 출산 전후 휴가 실시자 24명, 1년간의 육아휴직 대상 실시자 22명이 전원 아무 문제 없이 100% 복직했다. 하루 2시간 단축 근무를 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시행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여성고용비율이 업계 평균인 50.94%보다 높은 58.86%, 여성관리자 고용비율은 업계 평균(23.13%)보다 월등히 높은 62.69%에 달한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업무시간 외 초과 근무를 하면 1분 단위로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데 이를 전해 들은 다른 업종, 업계에서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방식, 문화를 혁신하고 바꾸기 위한 기업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리더십, 연공·연고주의, 빠른 실행력에 의존했던 일방통행적인 구조와 시스템에서 벗어나 호칭의 파괴에서 나타나듯 참여와 소통을 뼈대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는가 하면, 일과 가정을 병립해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방점을 뒀다. 저성장과 주력 산업 전반의 위기, 글로벌 기업과의 격화되는 경쟁 위기 속에서 낡은 기업문화를 혁신해 건강한 조직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자칫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배어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근무방법과 복리후생 개선, 의사소통 구조의 변화, 능력중심 채용을 통한 인사제도 혁신, 여성우수 인력의 우대 및 차별 철폐, 노사상생 등 제도부터 가치관까지 변화를 주려는 시도가 기업경영 전반의 큰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6월 기존의 수직적 조직문화의 틀을 깨기 위한 인사혁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한층 기업문화 혁신 여부에 관심을 쏟게 하는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함께 조사한 우리 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수준은 이런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0개 기업 가운데 조직경쟁력을 보여주는 조직건강도가 최상위, 중상위 수준인 기업은 23개에 그쳐, 전체적으로 글로벌 하위권으로 평가받았다.

또 다른 조사 결과,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 중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됐다’ ‘직무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긍정적 반응이 많았지만, 전체적인 국내 기업의 활용률 자체는 22.0%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유연근무제 도입 등을 통해서 시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이 헤쳐나가야 할 기업문화의 정립이 결코 말처럼 쉽고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에도 선진 외국기업의 모범 사례를 토대로, 기업문화를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와 변화에 대한 공감대는 꾸준히 형성돼 왔다. 2006년 즈음에 LG그룹이 CEO를 중심으로 고객을 위한 생활가치 혁신을 표방한 ‘고객가치 중심 경영’을 펼친 점이나, 포스코가 앞서 2000년대 들어 글로벌 기업 목표에 맞춰 직원들에게 비전, 미션, 공유가치 등을 부여하는 ‘글로벌 포스코 웨이’를 정립한 것 등은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기업문화의 혁신이 치밀한 전략적 방향 속에서 인내와 끈기를 토대로 실행하지 않는 한 자칫 밖으로 드러나는 ‘표방·슬로건 문화’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업문화는 해당 국가의 고유특성도 반영돼 있어 서구적 스타일을 도입한다고 곧바로 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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