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리더 직격 인터뷰 - 오세훈 前서울시장
오세훈(55) 전 서울시장에겐 늘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16대 총선으로 국회에 입문한 뒤 남경필·원희룡 등과 소장개혁그룹 ‘미래연대’를 이끌었고 ‘5·6공 인사 퇴진론’으로 당 혁신을 주도했으며 ‘오세훈 선거법’이라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일궈냈지만 이미지 정치라는 평가에 가려졌다. 정계 입문 전 TV 시사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탤런트 기질, 도회적이고 지적인 외모, 전격 정계 은퇴 선언과 깜짝 컴백 등으로 배태된 스타 본색 때문일 수도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건으로 재선 서울시장을 임기 중 하차하고 지난 4·13총선에서 떨어지는 등 잇단 불운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여권 차기 대권 주자군 가운데 지지율 1, 2위로 선두를 지키는 것 역시 그의 스타성을 말해 준다. 이를 뒷받침하듯 26일 오후 서울 혜화동의 ‘공(共)·생(生) 연구소’에서 2시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광범위한 분야의 질문들에 대해 주저함 없이, 깊이 있게 잘 정리된 답변들을 내놓았다. 특히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파의 지지만으로는 절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대권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현안부터 묻겠다. 우병우 민정수석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민정수석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부터 자문해보면 결론 내기가 쉽지 않을까. (120억 원 주식 대박의)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한 인사검증 실패 책임만으로도 본인이 거취를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법적 책임을 떠나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이미 지났다.”
―전당대회에서 비박(비박근혜)계 후보 단일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정병국·주호영·김용태 후보와 매일 전화 한 통씩 한다.”
―세 사람 중 누가 됐으면 좋겠나.
“누가 된다 해도 새누리당으로서는 즐거운 변신이 기대된다.”
―비주류가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근거는 뭔가.
“주류 후보들은 현시점, 즉 난파 직전의 새누리당에 필요한 리더십은 아니다. 비주류가 더 새로움을 줄 수 있고 국민이 고통스러워 하는 부분을 보듬어 안는 데 더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단일화 전망이 있나.
“모두 철석같이 약속했다. 방법론을 정하지 않았을 뿐 되는 걸로 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 (전 서울)시장이 4·13 총선에서 떨어진 것은 의외라는 평이 많다.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일단은 떨어진 사람 책임이다. 선거운동 개시 후 사흘 동안 다른 지역 지원유세를 다닐 정도로 안일했다. 하지만 당은 당대로 상향식 공천을 얘기하면서도 그 장점을 발현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경선 후유증을 수습하고 마음 상한 사람들을 되돌리려면 적어도 3개월이 필요한데 본선 한 달 전에 겨우 경선을 치르게 했다. 자해행위도 그런 자해행위는 없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막판에 무책임한 행위를 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공천 파동 뒤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도 문제였다.”
―계파 싸움을 끝낼 복안이 있나.
“계파 싸움을 끝내기는 힘들지만 싸움의 본질을 바꿀 순 있다. 어떻게 어떤 정책을 펼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한다면 국민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볼 것이다. 특정 정치인을 옹립하기 위해 혹은 내 정치적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싸우면 국민적 신뢰를 잃는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여권발 정계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국적 현실에서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이 쪼개져 나간 전례가 없다.”
―여당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가.
“지금 모습이라면 매우 힘들 것이다.”
―여권에 유력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말이 많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이 높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여권에 몸담은 것도 아니고.”
“그 부분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과거 3김시대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는 리더십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새로운 문화의 리더십 시대로 접어드는 단계다. 좀 지켜보자.”
“총선에서 떨어진 입장에서 아직 대권 도전을 공표한 건 아니지만 도전한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다. 국민이 양극화 혹은 부조리한 세상에 좌절하고 분노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국민의 분노다.”
―오 시장이 여권 후보가 되면 친박(친박근혜)계 후보일까 비박계 후보일까.
“난 어떤 정치적 유불리를 갖고 그걸 미끼로 해서 계파를 만든 일이 없다. 무리 짓는 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두 번의 서울시장 시절을 거쳤지만 줄을 세우지 않았다. 모름지기 자기가 갖는 비전과 철학을 드러내놓고 그것으로 평가받아 국민적 지지를 받고 당내 지지까지 만들어질 때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계파를 초월한 지지를 받는 대권 주자가 되고 싶다는 것인가.
“어느 한 계파, 한 지역의 지지만 받아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뭔가.
“공존과 상생이다. 그래서 내 연구소 이름을 ‘공(共)·생(生)’이라고 지었다.”
―다른 차기 리더들도 모두 양극화 해소를 얘기한다. 문제는 구체적 방법이다.
“요컨대 재벌과 기업이 사회적으로 명예롭고 존경받는 방법으로 부(富)를 내놓을 수 있게 하면 된다. 오너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대신 기업이 벌어들이는 대부분을 사회에 내놓도록 ‘빅 딜’하는 거다. 그런 생각에 몰입된 대통령이 나오면 그런 정책이 펼쳐질 것이고 재벌그룹도, 중견기업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발렌베리다. 국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군이면서도 이런 식으로 사회에 부를 환원했다. 지금 6대째 가업을 승계하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차기 리더로서 본인만의 장점은.
“나는 서울시장 시절에 전임, 전전임, 전전전임 시장들이 말만 하고 손도 대지 못했던 것들을 다 해냈다. 가동률이 20%밖에 되지 않던 광역 쓰레기 소각장들을 취임 1년 만에 모두 공동운영시켜 가동률을 90%대로 올렸다. 원지동 추모공원은 고건 시장 때부터의 숙원사업이었고 이명박 시장도 하지 못했지만 내가 해냈다. 합리성과 추진력이 내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큰일을 하려면 자기 세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핵심 지지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계파라는 의미에서 세가 없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비전을 내보이고 속마음을 드러내면 여론이 만들어지고 세력이 생길 것이다. 핵심지지층 얘기를 하는데, 지금 나에 대한 대구·경북(TK) 지지율이 낮지 않다. 오히려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 중 제일 높다.”
―한때 친박계가 미는 여권 후보라는 소문이 돌았다. 왜 그랬을까.
“2년 전 지방선거 때만 해도 친박계에선 오세훈 비판 일색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외에 체류하다 돌아오니까 그새 분위기가 바뀌었더라. 내가 거기에서 무슨 작업했겠나. 그 사람들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개헌론에 대한 입장은.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려면 권력구조보다는 기본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생각을 담은 책을 내놨다.”
―개헌이 실제로 가능할까.
“확률은 높지 않다. 생각들이 달라 국회에서 단일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던데 그렇다고 5년 단임제의 폐해가 사라질까.
“최소한 정책의 일관성을 더 기할 수 있다. 지금 단임제를 하면서 ‘전임자 부정’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치 현실에서 내각제는 맞지 않는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 흐름에 있다.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처럼 주입식 공부를 하고 수능시험을 치르는 교육시스템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 이런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변화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첫째 일이다. 정부의 둘째 일은 제조업이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하고 바이오와 만나고 디자인과 결합해 진정한 창조경제를 만드는 연구·개발(R&D) 혁명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은 어떻게 보나.
“자위권 행사 차원의 방어형 무기 배치를 갖고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등의 주장을 하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대 중국 관계 운운은 창피한 수준의 반응이다. 지난해 우리는 톈안먼(天安門) 망루외교,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등으로 충분히 선물을 줬다. 한·중 간 큰 문제 없을 거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제재정책과 유화정책, 그 어느 것도 버릴 게 없다. 북을 지원하면 친북이고, 제재하면 꼴보수인 것처럼 하면 답이 안 나온다. 노무현 정권에서 개성공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공단 폐쇄 같은) 제재도 할 수 있는 거다.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대권 수업을 위한 팀이 있나.
“분야별로 스터디 모임을 조직해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정리=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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