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법학

검찰호가 또다시 험난한 파도를 만났다. 최근 자살한 어느 평검사는 상관인 부장검사의 계속되는 폭행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극단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밝혀져 듣는 이들의 가슴이 메이게 한다. 현직 검사장으로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의 독직 사건이나 홍만표 전 검사장의 거액·과다수임 사건과 전관예우 의혹, 그리고 고위공직자의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일련의 의혹들도 국가 사정(司正)의 중추기관인 검찰의 명예 실추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들이다.

대형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검찰이 비난을 피해간 적이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도 개혁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검찰의 또 다른 민낯을 보여준 일이다. 검사의 소명의식(召命意識)과 품위가 매우 부패하고 저속해진 것 같다. 그동안 민주화와 공직윤리가 제도적인 측면에서 많이 발전해 온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내면 의식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는 데까지 이르렀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땅의 위정자들과 입법자들, 또한 보통사람들까지도 새로운 제도만 도입하면 새 삶의 방도가 곧 열릴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낙관론에 쉽게 젖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명사를 연구해 온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의식과 생활양식의 발전 내지 고양은 수세기 이상 부단(不斷)한 교육과 규율을 통해 비로소 안착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검찰청법은 제정된 후 스무 번 가까이 개정됐다. 그 개정의 면면을 살펴보면 검찰 조직 내부의 탈(脫)권위주의와 민주화, 정치적 중립성 강화가 주종을 이뤘다.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상명하복 규정도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르되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그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가 있어도 실제 검사는 상관의 눈치를 살피는 집단 문화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상관이 자신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각 검사들의 사실과 법률 판단을 존중하고, 혹 그들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섬기는 리더십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금과옥조와 같은 제도가 있어도 내부의 세계는 여전히 겉돌 수밖에 없다. 정말 각자 공익의 대표자로서, 또 인권 옹호자로서 진실과 정의를 지향하는 같은 마음을 품고서 서로의 인격과 직무의 성실성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지 않는 한 상명하달식 조직 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경직되고 폐쇄된 조직 속에서는 비인격적인 권한 남용과 인맥, 연줄을 통한 정실(情實)변호, 전관예우 같은 작폐가 사라지기 어렵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이기도 한 선진화는 개방성과 더 많은 자유, 높은 품격과 도덕성, 청렴과 투명성, 이성과 창의성, 상호 존중과 승인 같은 가치 토양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서구 선진사회는 이미 근대성 프로젝트 속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그 결실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선진 법치사회와 문화는 우리 시대의 검찰문화·사명·기능이 공통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평이다. 다시 정치권에서는 공직비리수사처 같은 새 제도를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판과 함께 격론이 일 전망이다. 하지만 검찰 문화가 변해야 하고, 그것이 바뀌려면 제도보다 먼저 의식을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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