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문화부 부장

말끝마다 ‘관광’이다. 불황에 허덕이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대안이 늘 관광이다. 관광을 무슨 ‘서커스단 천막’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두말할 것 없이 ‘쉽고 편해’ 보여서다. 큰 밑천 들일 것도 없이 관광지 몇 곳을 정비하고, 이야깃거리를 꾸며 홍보만 좀 하고 나면 외지 사람들이 몰려와 저절로 돈을 쓰고 갈 거라고 믿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 기간에 울산의 태화강 십리대숲과 대왕암공원을 깜짝 방문했다. 울산을 휴가지로 택한 것을 두고 청와대는 ‘지역 경기 활성화 지원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해운업종의 추락으로 울산은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거제와 창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앞서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여름 휴가지로 울산과 거제를 추천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격세지감. 지금은 경기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울산과 거제, 창원은 조선·해운업의 호황으로 흥청거렸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와중이었음에도 고급 식당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유흥가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그 무렵 거제시청 공무원과 나눈 이야기 한 토막. ‘관광자원의 매력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얘기하자 돌아온 답이 이랬다. “조선소에서 1년에 거제에다 푸는 월급이 얼만지 아십니까. 4조 원입니다, 4조….” 한마디로 ‘푼돈 따위는 관심 없다’는 뜻이었다. 돈 얘기 하자고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말을 받으니 그만 머쓱해졌다.

불황의 골이 깊긴 깊었던 모양이었다. 거제가 관광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번엔 푼돈이 아니다. 통이 크다. 거제의 올해 관광객 유치 목표는 자그마치 1000만 명. 이 숫자에다 한 지역 방송사가 ‘관광객 1인당 30만 원’을 곱해서 ‘거제시가 3조 원의 관광수입을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이쯤이면 조선소가 거제에 푼다는 1년 월급에 버금가는 액수다.

과연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게 가능할까. 우선 관광객 숫자부터 따져보자. 거제시는 지난해 관광객 700만 명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 숫자는 거제의 관광지를 방문한 관광객 숫자를 합한 숫자다. 해금강을 찾은 관광객, 바람의 언덕을 찾은 관광객, 외도를 찾은 관광객을 모두 더했다는 얘기다. 관광객 1명이 3곳을 들렀다면 실제로는 1명이지만, 3명으로 계산된다. 이런 식으로 1명이 5명이 되기도 하고, 7명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손오공의 둔갑술이 따로 없다. 이런 방식의 집계도 어이없지만, 더 황당한 건 4인 가족이 2박 3일 거제여행에 평균 120만 원을 쓰고 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산이다.

사실 거제에서 이런 과장과 허풍은 예삿일인지도 모르겠다. 거제의 일운면 망치고개에는 ‘50여 년 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거제 풍경에 반해 원더풀을 외친 자리’라며 ‘황제의 길’이라 새겨놓은 표지석이 있다. 셀라시에 황제는 1968년 한국을 방문했지만, 거제에는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다. 다 거짓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거제시는 근거없는 표지석을 세웠다. 이런 배포라면 뭘 못하겠는가. ‘서커스단 천막’을 세우는 것도, 손오공의 둔갑술처럼 관광객 숫자를 뻥튀기하는 것도….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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