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서태지 뮤지컬’로 화제가 된 뮤지컬 ‘페스트’(사진)에 대한 전망은 다소 복잡했다. 서태지가 이룬 음악적 성취는 뮤지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원작이 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과연 무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 결론적으로 페스트는 아쉬운 작품이다. 서태지라는 문화 아이콘이 지닌 무게감에 짓눌린 듯 보였다.
페스트는 서태지의 음악을 활용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을 표방한다. 김성수 음악감독은 20여 곡을 아주 영리하게 편곡했다. 뮤지컬 넘버(삽입곡)들은 자연스럽게 무대에 녹아든다. 하지만 귀에 익은 멜로디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너에게’ ‘마지막 축제’ ‘죽음의 늪’ ‘시대유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솔로 활동 시절의 음악이라 골수 팬이 아니면 생소하다. 물론 서태지는 단순히 1990년대 인기가요를 통한 ‘추억팔이’ 뮤지컬을 원하진 않았을 거다. 관건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추억하는 대중과 솔로 활동까지 애정을 가진 ‘서태지 마니아’ 사이의 줄타기. 그러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난 알아요’와 ‘하여가’ 등이 빠지면서 뮤지컬은 마니아층으로 기울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 그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배경은 국가가 개인의 모든 걸 통제하게 된 미래 사회다. 오랑 시에 전염병 페스트가 퍼지면서 이 시스템은 시민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순응하는 자, 저항하는 자, 진실을 은폐하는 자 등이 나타나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지속적으로 회전하는 무대가 볼 만하다. 기억제거장치, 격리수용소, 시의회 등 차갑지만 세련된 미래도시가 펼쳐진다.
가장 큰 구멍은 인물들의 행위에서 ‘왜’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 리유와 타루, 랑베르 등 설득력 떨어지는 인물들이 극을 진행하며 스토리가 힘을 잃었다. 카뮈의 실존주의를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