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깨알메모 적은 창작노트 ‘야생연극’ 펴낸 이상우 교수

“40년 연극 했지만, ‘연극은 무엇인가’ 같은 진지한 책치고 도움되는 거 별로 없더군요. 연극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생물과도 같으니까요. 그저 후배들이 한 번 정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이상우(사진) 극단 차이무 예술감독이 최근 젊은 연극 작가를 위한 창작노트 ‘야생연극’(나의시간)을 펴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여름 내내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의 개인 작업실에 머물 예정이라는 이 교수를 지난 7월 29일 만나고 왔다.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 내내, ‘왜?’라고 질문한 사람은 늘 왕따였습니다. 그래도 그대가 창작자라면 감당할 수밖에.’ ‘연극은, 예술은 마취를 깨우는 각성제. 연극작가의 태도는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3막 1109장으로 이뤄진 책은 창작의 소재를 만났을 때,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 연출하며 느낀 점, 연극에 대한 철학, 사사로운 단상, 성찰을 담은 고백, 기억하고 싶은 ‘남’의 말과 글들로 빼곡하다. 짧지만 힘이 있다. 야생연극, 야생배우, 야생연출이라는 막이 나뉘어 있지만 기승전결이 없고 특정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이 교수는 “주변에서 ‘이상우 식’이라고 하더라.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다르다’는 의미 아닐까”라고 말했다. 1977년 연우무대 창단 멤버이자 1995년 극단 차이무를 탄생시킨 그는 ‘늘근도둑 이야기’ ‘돼지사냥’ ‘칠수와 만수’ ‘장산곶 매’ 등을 작·개작 연출하며 한국 연극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책은 그러는 동안 꾸준히 메모한 글들이다. 특히 20여 년 전부터 메모는 완전한 습관이 됐는데, 직접 만든 메모노트가 수백 권에 이를 정도.

“연극 인생 40년이에요. 그런데 제대로 성찰하며 연극을 한 건 20년이죠. 왜 연극을 하는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더 의심하고 의문을 던지며 메모를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메모노트는 한예종에서 종종 수업 교재로 활용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딱딱하고 지루한 교과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들이 넘치는 참교재라 탐내는 이들이 많았다. “퇴임 후에 물려 달라”는 제자들 덕에 출간까지 결심하게 된 것. 이 교수는 “오랫동안 내 공부 삼아, 길에서 책에서 연습실에서 공연장에서 강의실에서 이것저것 주워서 메모해 뒀던 생각 쪼가리들이다. 연출노트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독후감, 반성문이기도 하다”며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연극을, 연극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샛길을 하나 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잘 만드는 법, 연출 비법 같은 ‘지름길’은 없지만, 책의 어디를 펴도 ‘저건 어떨까’ ‘꼭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상우 식’ 생각거리가 툭툭 튀어나온다.

“연극을 많이 본다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연극을 잘 만드는 게 아니지요. 남의 것을 많이 볼수록 비슷해지기만 합니다. 그보단 고민을 더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성 = 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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