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교수 인터뷰

“현각스님이 제기한 문제들은 불교만이 아니고 개신교를 비롯한 한국의 주류 종교들, 더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들입니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에서 철학·신학적 담론을 가르치며 다양한 국제활동을 하는 신학자 강남순(사진) 교수는 “위계적 구조, 기복신앙 경도, 남녀 차별, 신자들의 무조건 순종 등은 개신교에서도 이미 제기돼온 문제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칼럼집 ‘정의를 위하여’(동녘)를 펴냈고, 방학을 맞아 국내로 돌아와 강연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강 교수에게 3일 최근 안팎의 종교문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각 스님이 제기한 종교문제들에 대한 공감대가 큰 것 같다.

“대부분 종교가 옷만 다르게 입었지 내면은 같다. 종교만 보자면 사회적·정치적 책임을 등한시하고 개별적·물질적 성공에만 몰두하는 종교의 자본주의화가 공통적으로 심각하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정치·경제·교육 등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근원적 철학의 부재가 종교로 내면화된 것이다. 우리는 공교육 구조부터 정치제도까지 서구에서 들여왔지만, 껍데기만 취하고 내용과 이념은 가져오지 못했다. 그 내용은 개별 사람 간의 평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철학이다. 독일과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유치원부터 배우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평등과 존중이었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집단·공동체란 이름으로 개인의 개성을 누르고 위계를 배운다. 힘을 가진 사람이, 그러니까 학교에선 선생이, 대학에선 학번이, 종교현장에선 성직자들이, 사회에선 돈과 직위, 하다못해 나이가 위계적 구조를 설정한다. 군대문화와 똑같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다.”

―신자들의 무비판적인 순종도 종교의 변화를 어렵게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물음표를 박탈한 사회’다. ‘왜?’라고 물으면 학교에선 불량학생이 되고, 교회나 절에서는 신실하지 못한 신도로 찍힌다. 이런 패턴이 모든 곳에서 작동한다. 물음표를 회복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단순히 묻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물음을 할 수 있다. 인문학이 남용되지만, 진정한 인문학은 치열하게 근원적인 물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종교의 변화를 말하자면 다층적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이 같은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변화의 주체가 되려는 의식이 생겨야 동시다발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이번에 와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휴가철임에도 많은 분이 찾아온 것을 보며 그런 희망을 보았다.”

―기성종교에 실망한 신자들이 교회나 사찰을 떠나 ‘종교 밖’에서 공부하는 모임들이 한국에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제도화된 종교를 떠나 영성훈련이나 신비주의적 명상을 하는 건 이미 미국, 유럽 등에서 세계화된 현상이다. 내면적 성찰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위험성이 있어 그것을 극복하는 모임이 될 때 이상적이다. 이런 모임이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화할 때, 영성을 인간의 구체적인 육체성과 분리된 것으로 볼 때, 탈(脫)정치화·역사화할 때, 사회변화를 위한 저항적 힘을 기를 수 없다. 내가 이번 책에서 말한 ‘윤리적 저항’은 자기 내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그것이 부재하면서 변혁의 소리가 외부로만 향할 때 이는 억압으로 작용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이런 모임이 정치·역사 등 구체적 정황들과 끊임없이 연결되면서 내면의 성찰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미국이나 유럽 쪽의 종교와 신자의 관계는 어떤가.

“미국 개신교는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하고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류교단에서 교회운영은 민주적이다. 내가 속한 연합감리교회에서 1년간 목회를 했었는데, 목사의 역할이란 설교 등 특정한 기능에 한정돼 있고, 교회 운용은 신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관장한다. 장로나 권사 등 위계적 직분도 없다. 한국처럼 목사가 마치 ‘CEO’가 돼 모든 것을 지휘하는 교회는 보기 어렵다.”

―한국의 종교는 어떤 부분에선 사회적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 개의 상충하는 역할을 해왔다. 억압할 때 심각한 건 신의 이름을 빌려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들 수 있는데, 이미 사회적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통해 성소수자가 질환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란 결론이 나왔지만, 여전히 성경을 들고 하나님의 뜻이라며 차별하고 극단적 혐오를 심는다. ‘개독교’란 이름이 그래서 나오는 게 아닌가. 타종교도 성소수자 차별에 침묵하는데, 이는 암묵적인 동의다. 예수 가르침의 핵심은 평등과 정의, 타자에 대한 ‘환대’이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는 예수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신을 배반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가 타종교에 대한 공격을 선언하면서 국제적으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유한자인 인간은 종교를 통해 ‘진리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을 하고, 그것이 구원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진리의 확실성, 절대성을 타자에게 강요할 때, 그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를 사악하다고 규정하고 폭력과 테러를 행사하며 그것을 신의 거룩한 일이라 여긴다. 데리다가 말하는 ‘종교 없는 종교’나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요하네스 에크하르트의 ‘나는 신에게 내 속에서 신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유명한 기도문은 그 같은 진리의 확실성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고…’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신앙을 절대적이라고 믿고 상대를 부정할 때 폭력이 발생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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