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인 상공부 상역국장(商易局長)은 단순한 국장직이 아닌 막강한 자리였다. 1980년대 이 직무를 수행했던 A 전 고위관료의 회고. 그는 “상역국장의 권한, 힘이 (사정 당국, 권력 상층부의 실세 못지않게) 아주 셌다”며 “윗선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있어 수출과 관련된 민원은 전화 한 통화면 해결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수출은 정말 잘 됐다”고 전했다. 30여 년 전의 일이고 권력 지형, 교역 환경도 변한만큼 작금에 적용할 ‘시스템’은 아니겠지만, 3저(저금리·저유가·저원화)를 등에 업은 단군 이래 전례가 없는 경기호황이었는데도 불구, 정책적 차원에서 수출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상역국장 일화가 떠오른 것은 심상치 않은 수출 감소 현상 때문이다. 지난 7월도 전년 같은 달 대비 10.2% 감소하면서 1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70년 월간 수출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에 속한다. 수출 감소에 못지않게 수입 감소 폭이 더 커 흑자는 거두고 있지만, 이 같은 ‘불황형 흑자’는 결코 권할 게 아니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출의 내용을 뜯어보면 장래는 더 암담하다. 간판 주력 업종인 석유, 철강, 가전, 유·무선통신기기, 반도체, 액정 장치, 승용차, 자동차부품 등이 모두 줄 감소다. 지난 6월에 가전제품만 1.3%, 선박은 기건조 물량 때문에 31.4% 늘었을 뿐이다. 그야말로 주력의 침몰이다.
수출 감소의 배경에는 정부나 민간·국책연구기관의 공통된 분석이 말해주듯 세계교역량 둔화, 유가 하락,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수출단가 하락, 중국의 내수중심 성장 전략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 탓으로만 돌리고, 다음 달이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위무(慰撫)적인 조치에 안주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수출 의존적 경제 구조가 지대한 우리 사정을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주력 품목의 쇠락, 퇴조 역시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 10년간 국내 10대 수출품은 거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점차 덜 팔리는 품목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일 정도로 수출부진이 구조적”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그래서 앞으로 5∼10년 후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총수출 차지 비중이 26.0%로 의존도가 절대적인 중국 교역 환경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신경전에서 알 수 있듯 이런저런 무역보복 조치가 고개를 들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살얼음판으로 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유럽 은행권 불안 심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신흥 시장 침체 등으로 내년 이후 수출 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
정부는 8월을 수출 마이너스 행진에 마침표를 찍고 증가세 전환의 1차 시험대로 삼겠다고 했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돌리는 ‘국면전환’도 중요하다. 그러나 수출 위기를 계기로, 더욱더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구조적 쇄신에 가까운 대책을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1∼2개월 플러스로 돌린다고 미봉책에 그친다면 이젠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 부실한 주력산업의 경쟁력으로는 언제든지 외풍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시간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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