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남자 양궁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 4강전에서 맞붙었다. 양궁 경기장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는 오후 늦게부터 바람이 불었다. 이곳은 평온했다가도 돌연 소용돌이 바람이 나타나고, 사대(射臺)와 과녁 부근의 풍속이 다르기도 해서 선수들이 애를 먹었다. 세 명이 돌아가며 쏘는 경기에서 한국은 1엔드를 55-53으로 앞서나갔지만, 3엔드를 지나며 164-165로 1점 차 리드를 허용했다. 마지막 4엔드, 한국이 6발에서 55점에 그친 사이 미국은 10점 과녁에만 5발을 명중시키며 승리를 확정 지었다. 최종 스코어 219-224, 올림픽 4연패가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한국 과녁에 꽂힌 화살은 9시 방향에 몰려 있었다. 오(誤)조준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기식 미국팀 감독은 “바람을 잘 읽어낸 것이 주효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는 한국 양궁을 세계 정상으로 이끈 1세대 스타 선수·감독이다. 4년이 지나 리우에서 만난 양 팀은 정반대의 결론을 썼다. 미국은 매 세트 56~57점의 고득점을 올렸지만, 한국 선수들은 한 수 위의 58~60점으로 압도했다. 이 감독은 “이렇게 쏘면 이길 수 있는 팀이 없다”고 두 손을 들었다.
화살의 궤적은 곡선이다. 중력은 위아래로, 바람은 좌우로 개입한다. 바람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선수가 느끼기엔 사나운 듯해도 화살이 안 날리는 바람이 있고, 드러나지 않아도 은근히 무거운 바람이 있단다. 그런 바람의 결까지 읽어 과녁을 비켜 과녁을 맞히는 것이 오조준이다. 반복 훈련을 통한 기억과 통찰의 소산이다. 양궁뿐 아니라 골프·당구·검도에서도 오조준은 고수의 기본 요건이다. 스포츠에서, 또 인생에서 하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정조준이다. 과녁에 집착하면 적중(的中)이 어렵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김훈, ‘칼의 노래’).
남자양궁 결승전이 벌어진 리우 양궁 경기장엔 바람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 승부를 가른 건 바람이 아니라 ‘멘털’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 중 상대 과녁에 꽂힌 화살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심한 듯 차례로 ‘텐·텐·텐’을 꽂아넣었다. 활쏘기에서 최상의 경지는 ‘마음속의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했다. 발군의 실력에다, 정조준·오조준을 넘어 ‘심(心)조준’으로 무장한 한국 남녀 양궁이라면 그 아성은 좀체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