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현상에도 발생하기 전 징후가 있다. 그 징후를 잘 읽고 대비한 시대는 진전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 파국을 맞았음을 역사는 가르친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시티그룹의 CEO였던 척 프린스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음악이 끝나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하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한, 당신은 일어나서 춤을 출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각종 위기 징후에 대한 멋진 은유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음악이 연주 중이다. 대부분 귀를 기울이는 음악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경청하고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사용후핵연료’처럼 미래를 위한 준비에 대한 논란이다. 마땅히 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자 시대적 책임이지만 압도적 찬반 프레임 속에 주장들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책임지고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우리처럼 안정적으로 전기를 쓰는 나라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쟁점이 있지만, 지금까지 사용해 온 값싼 전기가 우리나라 발전의 주요한 버팀목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전기의 3분의 1을 원자력발전을 통해 공급하고, 거기에서 사용후핵연료라는 고준위방폐물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열과 방사능이 높아 각별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기에 국제사회가 관리원칙까지 마련해두고 있다.
가장 좋은 방안은 사용후핵연료를 한데 모아 국제규제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인데, 역대 정부에서는 이를 위한 부지선정에 9번이나 실패했다. 거기에, 원전 가동 38년이 지나도록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정책도 수립하지 못하다가 두 달 전에 간신히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탄생한 기본계획인 만큼 모든 사람이 환영하는 완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 소통이 부족했으니 철회하고 다시 하라는 목소리가 반핵그룹을 넘어 국회에서도 나오는 것은 결코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행정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적 사회 운용으로 이행한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서툴다. 제도도 미비한 점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실행 과정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반대하면 무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여론이 중요하고, 정책 피드백 과정이 필연적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정책 단계별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국민적 인식은 어떠한가? 대다수의 국민은 무관심하고, 일부에서는 절차를 다시 하라고 주장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사용후핵연료는 포화를 향해 가고 있는데, 절차를 되돌리라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우리 모두 전기를 쓴 책임은 뒤로하고 주장만 내세우는 꼴이다.
정부는 전전긍긍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공언한 대로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소통에 나서 정책 이후의 과정을 잘 설명해야 한다. 탈핵을 주장하는 국회의원이라면 향후 탈핵을 위해 원전 부산물을 처리하는 일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지자체나 지방의회라면 더 적극 나서 정부를 감시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입체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설마 지금은 음악이 연주되고 있으니 춤을 출 수밖에 없다면서 각자의 목소리만 내는 것인가? 음악은 끝나기 마련이다. 해법은 그 안에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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