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흔적을 걷다 / 정명섭·신효승·조현경·김민재·박성준 지음 / 더난출판

일제강점기 일본이 남겨놓은 전쟁과 수탈의 자취를 좇아 우리 땅 구석구석을 답사하고, 당시의 먼지 덮인 기록을 뒤적여 엮은 책이다. 다섯 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 일제가 남겨놓은 전쟁과 수탈의 공간을 찾아내 과거의 흔적을 찾고 기억의 무게를 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광복된 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제국주의 침탈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이렇듯 우리 곁에 가까이 남아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서울 남산에는 조선 황실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조선을 완전 병탄할 목적으로 일제가 서울에 설치했던 감독기관 통감부 관저의 표지석이 남아있다. 남산 일대에는 일본 신을 모시는 신사의 잔재도 곳곳에 있다. 경희궁에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대규모 방공호가 있고, 군산 시내의 한 초등학교 담 뒤에는 일본인 지주가 통째로 금고로 쓴 건축물이 남아있다. 제주 성산 일출봉 절벽에는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 진지가 있고, 동백꽃으로 이름난 거제의 지심도에는 일본군이 만든 해안포와 탄약고는 물론이고 일본군 병사들이 매일 일장기를 올리던 국기게양대도 있다.

저자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돌며 소개하는 건 일제강점기 건축물 가운데 침략 전쟁과 수탈 통치의 중심에 있었던 곳들이다. 찾아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소개하는 기행문 형식의 글이지만, 건축물이 세워진 앞뒤의 역사적 배경을 세밀하게 훑으며 역사의 상처를 더듬는다. 통치를 위해, 혹은 전쟁을 위해 지은 건축물을 통해 일제가 우리 땅에서 달성하고자 했던 야욕과 만행을 들여다본다. 군산에 남아있는 대지주 시마타니 야소야(島谷八十八)의 금고 건물을 소개하면서, 일본인 지주들이 소작농을 쥐어짜서 금고를 현금과 문화재로 가득 채워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목포의 일본 영사관 뒤편 방공호의 조선인과 일본 관리의 동상을 통해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던 가혹한 폭력과 굶주림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서술은 역사적 사료나 책 속에 갇혀 있던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것으로 투사해냄으로써 보다 실재적이며, 입체적으로 전달해준다.

저자들이 일제강점기 건축의 자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또 독자들이 그 노력의 기록을 책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문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불행한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예방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상처는 시간이 가면 아물지만, 역사는 잊으면 또다시 반복되는 법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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