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를 보라. 하얀 바탕에 ‘시각디자인’이라는 독특한 글씨체의 제목 다섯 글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다. 지나치게 단순한가? 너무 심심한가? 하지만 일반적인 책표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일단 당신의 눈길을 끌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선 성공이다.
따지고 보면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에는 ‘시각디자인’이 담겼다. 책표지부터 매일 접하는 지폐, 휴대전화, 음식점 간판까지 모두 시각디자인이다. 시선에 포착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에 대해 아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시각디자인이 미술이나 수공업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은 인류의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인쇄술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 시각디자인의 예술적인 가치는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그것의 수많은 복사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입는 옷의 안쪽 태그에 새겨진 몇몇 그림을 보고 손빨래를 할지, 중성세제를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각디자인은 미학적 가치를 넘어 대중에게 정보까지 전달한다.
이런 시각디자인의 본질은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 속에서도 발견된다. 1524년 위대한 판화가로 칭송받던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로 지은 궁전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불온한 포르노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줄리오 로마노가 아니라 마르칸토니오가 투옥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 그리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판화가인 그로 인해 복사본이 급속도로 보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권력자들이 대중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시각디자인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대중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을 수 있는 ‘볼 것’을 만드는 작업으로서 주목받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디자인학교의 교수지만 단순히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디자인에 담긴 ‘인지심리학’에 집중한다. 글자의 문자적인 해석, 하나의 그림이 주는 1차원적인 정보를 넘어 글씨체와 글씨의 색깔, 그림 속 사물의 위치, 여백의 미에 따라 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대중이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최고의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이 꼭 디자이너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때로는 수학자나 공학자, 철학자가 남다른 디자인을 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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