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은어낚시통신’의 배경인 울진 왕피천은 윤대녕과 그의 부친이 은어낚시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생태경관보전지구로 지정돼 있으며 맑은 물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기에 좋다.  박경일 기자 parking@
단편 ‘은어낚시통신’의 배경인 울진 왕피천은 윤대녕과 그의 부친이 은어낚시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생태경관보전지구로 지정돼 있으며 맑은 물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기에 좋다. 박경일 기자 parking@

46 윤대녕 소설 ‘은어낚시통신’ 배경…울진 왕피천

단편 ‘은어낚시통신’은 ‘한국문학’ 1994년 1, 2월 합병호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 전 해에 나는 ‘은어(銀魚)’라는 단편소설을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적이 있으니, 연작 형태로 두 편의 소설을 쓴 셈이다. 어떤 평론가가 이 소설들을 가리켜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비평적 표현을 썼고, 그 후 그 말이 꼬리표처럼 내 소설에 붙어 다녔다. ‘은어낚시통신’의 서두는 아래와 같이 시작되는데, 작품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이 몇 줄이 나로서는 일종의 모험이었고 위험한 시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 시대의 소설들과는 전혀 색채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것은 작가의 운명을 건 도박이기도 했다. 실제로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1994년 3월)이 발표되고 나서 한동안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던 1964년 7월 12일에 아버지는 울진 왕피천에서 은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그는 왕피천과 호산 기곡천, 그리고 양양에 있는 남대천으로 계류낚시를 즐기러 가곤 했다. 그리하여 그날 칠월의 무더위 속에서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나를 낳았던 것이다.

그날따라 조황이 좋았던지 아버지는 바구니 가득 은어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강보에 싸인 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이놈이 크면 함께 은어낚시를 가야지.

나는 그 소리에 잠이 깨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속성 재배하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 여름철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은어낚시를 다니곤 했다. 은어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던 중에 우리의 털바늘낚시나 놀림낚시 채비에 걸려들었다. 우리는 은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하구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9월 무렵까지 낚시를 계속했다.

은어가 봄이 되면 바다로부터 돌아와 여름내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나 또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들을 따라 강으로 회유하곤 했다.”




내가 등단한 해인 1990년은 세계사적 변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1989년 11월 전후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잇따라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가고 세계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과도기적 상태가 찾아와 있었다. 분단국인 우리도 마땅히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을뿐더러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맞아야만 했다. 지식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은 이 시기를 뭉뚱그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도래라고 말했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나온 말이다. 특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전시대의 패러다임을 상실한 채 저마다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80년대는 민중·노동해방 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고 그것은 마땅히 문학이 짊어져야 할 짐이자 영예이기도 했다. 그런데 90년대 초입으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그 모든 짐과 영예에서 놓여나게 된 것이었다. 비록 갓 등단한 처지였지만, 나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대개의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밀실로 퇴거해 신생을 꿈꾸며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가장 괄목할 만한 사회, 문화적 변화는 외국 문화에 대한 격렬한 소비 지향적 태도였다. 이와 맞물려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고 개인들은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채 자아와 내면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더불어 신촌, 강남, 홍대 주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소비 문화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고 이들은 군집 형태를 이뤄 암암리에 저마다의 고유한 집단을 형성하기도 했다. 미국의 60년대와 유사한 저항적 태도의 자유분방함과 자기소비적인 낭만과 허무의 태도가 한데 뒤섞여 있던 시기였다. 고현학적 측면에서 볼 때는 록카페를 포함한 지하의 카페 문화가 그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여기에 신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운집해 허무적 태도로 삶을 소비하거나 혹은 미래의 출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삼십 대로 접어든 나 역시 그 젊은이 중의 하나였다.

한편 전시대 문학의 패러다임이었던 민중·노동해방의 열기가 다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들은 이른바 ‘후일담 소설’을 만들어냈는데, 대중의 관심은 이미 그것에서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81학번의 신출내기 작가였던 나는 누구보다도 더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무렵 나는 70, 80년대 우리 문학이 간과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을 포함한 집단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오랜 세월 분단과 이념 대립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 문학은 자아나 개인, 여성,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 해왔던 게 사실이었다. 따라서 나는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로써 삶의 생태성을 복원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은어’의 모천(母川)회귀 모티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고 취재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가닿은 곳은 양양의 남대천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남대천에서 나는 수년 전 모천을 떠나 바다로 나갔던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장엄한 풍경을 목격했다. 그 가슴 떨리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처 간성의 북천과 울진 왕피천을 돌아 서울로 돌아온 ‘銀魚’라는 단편을 써서 발표했다. 연어가 아닌 ‘은어’를 상징으로 채택한 건 은어가 갖고 있는 그 맑고 순연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또한 어렸을 때 부친과 은어낚시를 다녀본 경험이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연어나 은어의 모천회귀는 ‘태양 컴퍼스’라는 자연의 순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이는 태양의 위치, 이동을 목표로 철새나 물고기가 주기적으로 대규모 이동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철저히 생태성에 따른 것으로 동물을 포함한 인간도 이 순환적 체계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나는 이념 대립으로 분열되고 와해된 삶의 생태성 회복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자연의 순환 원리를 창작 모티프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이듬해 나는 섬진강을 취재한 다음 ‘銀魚’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은어낚시통신’을 쓰면서 내가 앞으로 해나갈 작업의 방향성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은어낚시통신’의 주인공 ‘나’는 서른 살의 사진작가이자 일간지에 ‘길 따라 물 따라’라는 기사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느 날 ‘나’는 ‘은어’를 문장(紋章)으로 하는 익명의 집단으로부터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엽서를 받게 된다. 엽서에는 ‘내’가 얼마 전에 신문에 기고한 ‘은어낚시 기사’를 보고 집단의 모임에 초대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그 집단에는 수년 전에 ‘나’와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진 여자가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무명의 배우이자 광고 모델이었고 3년 전에 제주도에서 ‘나’와 만나 한동안 사귀다 헤어진 상태다.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집단의 초대에 응하기로 하고 홍대 근처에 있는 지하 카페로 간다. 그들은 ‘신생(新生)’을 꿈꾸는 집단으로 작품에서 묘사된다. ‘나’는 거기서 마침내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과거에 ‘나’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었음을 알게 된다. 해후가 이뤄진 순간 그녀는 “그때부터 나는 회귀하고 있었죠”, “이제 당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먼 곳에 가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지나온 삶을 뼈아프게 되돌아본다.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 울진 왕피천까지 와 있다고 나는 말했다 (…) 그녀는 산란 중인 은어처럼 입을 벌리고 무섭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먼 존재의 시원, 말하자면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할 장소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보다 많은 밤과 낮을 필요로 해야 했다(…) 아침에 오기까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살아온 서른 해를 가만가만 벗어던지며, 원래 내가 존재했던 장소로, 지느러미를 끌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위 인용문에서 ‘그 먼 존재의 시원’이나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할 장소’는 곧 은어가 회귀하는 모천이며 삶의 재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은어는 단년생 물고기로 바다에서 4·5월 사이에 각 하천으로 오르게 되는데, 8월 무렵까지 계곡의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9월 추석 무렵에 다시 하구로 내려와 자갈바닥 주변에 산란을 하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때 부화한 치어들은 바다로 내려갔다가 이듬해 봄 벚꽃이 필 무렵, 남풍이 부는 계절에 다시 자신들이 태어났던 지점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태양 컴퍼스에 의한 이동인 것이다.

우리나라 은어의 회유 지점(모천)은 양양 남대천, 울진 왕피천 외에도 호산 기곡천, 간성 북천, 밀양강, 섬진강, 마읍천, 주수천, 낙풍천 등 많은 곳이 있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 중간에 위치한 남대천은 연어의 회귀 지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가을이면 모천으로 돌아오는 은어, 연어떼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울진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금장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매화천과 불영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흐르는 광천의 물줄기가 울진군 근남면에서 합류해 동해로 흘러드는데, 그 길이가 무려 백 리가 넘는다. 왕피천은 사철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을 연출한다. 봄이면 불영사로 이어지는 긴 계곡에 아카시아꽃이 만반해 있고 가을에는 곳곳에서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 년 전 여름 나는 다시 울진 왕피천을 찾았다. 가을이면 낚시꾼들이 몰려들어 불법으로 은어나 연어를 잡아대는 남대천의 볼썽사나운 풍경과 달리 왕피천은 여전히 ‘시원(始原)’의 깊고 그윽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불영사까지 올라갔던 나는 갑자기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맞으며 왕피천 계곡을 따라 천천히 바다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윤대녕(작가)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