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논설위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셈법은 무엇인가. 공식 입장은 분명하다. ‘동북아 세력 균형을 깨트리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교관과 학자들은 사적 자리에서도 이 주장을 반복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행동은 이런 말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이 ‘사드 반대’ 문안을 넣어야 한다며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규탄 성명 채택을 발목 잡았을 때, 러시아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또 최근 러시아 당국자와 관영 매체는 사드 관련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다음 달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문제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싫은 눈치’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영토에서 첫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5월 러시아 전승절 기념식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9월 중국 전승절에는 참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톈안먼 망루에 함께 서는 모습을 보여줘 러시아를 섭섭하게 했다. 다행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번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미국 등 서방진영에 대한 한국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를 운운하면서도 다소 엇박자를 내는 것은 실리 계산 때문이다. 러시아로선 시베리아 개발이 매우 시급하다. 석유 등 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에 자원의 보고(寶庫)인 시베리아의 전략적 가치는 러시아의 사활과 직결돼 있다. 그러나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몰려오는 중국인과 중국 자본이 반가울 수 없는 것이 러시아 처지다. 자칫 잘못하면 동시베리아를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미래 예측 전망까지 나오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베리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한국과 일본 자본의 적극적 진출이 절실한 것이다.

또 ‘유럽과 극동, 두 곳에서 동시에 전선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러시아의 전통적 대외전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러시아는 대(對)독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과의 교전을 회피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크림 사태로 인해 유럽 전선의 긴장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극동은 후방 배후지로 남겨둘 필요성이 큰 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친러 블록에 가담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힘을 아시아로 분산시켜 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고 있다. 또 기대했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좌절시킨 북핵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이면서도 ‘북한의 완충지 역할론’을 고수하고 있다.

흔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렘린에 비유한다. 또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동방의 지배’란 뜻이다. 동방경제포럼이 끝나자마자 항저우 G20 회의가 열린다. 중국이 항저우회의 안건을 경제로 한정하자고 요구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국의 고차 방정식 외교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눈앞의 패보다는 전체 구도를 읽고 대응하는 외교 전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sj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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