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까지 아껴 서사시 유행
韓流 이미 리얼타임으로 침투”
‘감성 독재.’
장진성 시인은 북한의 통치방식을 이 한 마디로 축약했다. 장 시인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체제 독일에서 유독 체제 선전이 많았다”며 “거짓말이 많은 체제일수록 체제 선전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장 시인이 2009년 펴낸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는 북한 문화가 수령의 사유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서사시로 고발한다. 1999년 ‘준마처녀’로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를 끈 보천보전자악단의 여가수 윤혜영의 삶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의 결말은 처절한 비극이다. 작품 속에서 윤혜영은 자신의 환심을 사려 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와 동반 자살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작품의 곳곳에는 김 위원장의 사치스러운 사생활이 담겨 있다. 장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음악은 물론 인간인 가수까지도 수령의 사유물로 취급하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고발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문학·영화·음악 등 북한의 모든 문화 콘텐츠에서 주인공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명뿐이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장 시인은 자신의 탈북이 ‘수령주의 문학으로부터의 도피’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북한에서 썼던 서사시의 인기도 체제 선전과 맞물려 있다. 김일성 시대만 해도 혁명 소설이 선전의 도구였지만, 1990년대 중·후반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경제가 급속도로 어려워지는 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로 접어들면서 소설의 인기가 사그라졌다. 값이 비싼 종이가 귀해진 동시에 주민들도 ‘충성 가치’보다 ‘물질 가치’를 중요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 게 장 시인의 설명이다. 혁명소설보다 적은 양의 종이를 들여 주민들을 세뇌할 수단이 필요해지면서, 지도층이 의도적으로 서사시를 유행시켰다는 것이 장 시인의 분석이다.
이 같은 감성 독재의 한계는 뚜렷하다. 장 시인은 “한류는 이미 북한을 점령했다”고 단언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북한 내부에서 대중들에게까지 인기를 누리면서 한류 현상은 날로 확산하는 추세다. 법적으로 남한 문화 콘텐츠를 소지 및 관람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지만, 인기가 많다 보니 공급은 꾸준하다. 장 시인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개봉했을 2001년 즈음에는 배우 전지현이 북한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며 “한국의 문화는 중국을 거쳐 거의 ‘리얼 타임’에 가깝게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전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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