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면서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던 옛 조상들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혜를 얻고 싶어진다.
다산 정약용은 1824년 여름에 쓴 시 ‘소서팔사(消暑八事)’에서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누각에서 투호 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이다.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해도 자연 속에서 여유를 갖고 대상에 몰입하며 여름을 이긴 지혜와 풍류만큼은 배우고 싶다.
정조는 더위를 피해 그늘로 들어가는 식의 피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더위를 이기라고 했다. 어느 여름날, 신하들이 시원한 별전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권하자 정조는 서늘한 곳으로 옮기면 더 서늘한 곳을 생각하게 된다며 “참고 견디면 바로 이곳이 서늘한 곳이 된다”고 했다. 마음으로 여름을 이긴 정조에게 가장 좋은 피서법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
정조는 자신의 어록인 ‘일득록(日得錄)’에서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며 “더위를 물리치는 데에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개혁을 실현한 ‘독서 군주’ 정도 됐으니 이 더운 여름에 책 읽기를 최고 피서법으로 꼽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민희 국문학자가 쓴 ‘조선의 베스트셀러’라는 책에 따르면 시집간 여성들이 여름 피서로 친정 나들이를 갈 때 세책점(貰冊店)에 사람을 보내 소설책을 빌려 읽는 것을 가장 큰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 생긴 세책점은 다양한 책을 구비해 놓고 돈을 받고 빌려주는 곳으로 지금으로 보면 도서대여점에 해당한다. 이 세책점에는 당대 인기 있던 중국 연의류 소설이나 국내에서 창작된 영웅소설과 고소설 등이 구비돼 있었는데 한때 세책점에서 대여해주는 책이 100여 종 수천 책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소설이 음란하고 무익하다며 읽기를 금했지만 억압된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소설의 매력에 빠졌고, 특히 남성 중심적 세계에서 소외된 여성들에게 소설 읽기는 더위까지 잊게 한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여름 세책점의 인기는 시간을 넘어 지금 여기로 이어지고 있다. 여름이 절정에 달하면서 요즘 도서관과 서점에는 책 피서를 온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 대형 서점은 올여름 유난한 더위에 사람들이 시원한 매장으로 몰려오면서 연중 최고 성수기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요즘 대형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곳이 아니라 큰 책상과 의자가 마련돼 있어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다.
게다가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문화 예술 강좌가 열리고 흥미로운 행사도 마련되기에 더위도 식히고, 책도 읽고, 무엇인가를 얻어갈 수 있는 최고의 책 피서지가 되고 있다.
이 뜨거운 여름에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책에 몰입하며 여름을 이기고 이 ‘책 힘’으로 여름 너머를 준비했으면 한다.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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