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전쟁때 보급 → 민족주의로 산업 육성 → 글로벌화

칭다오, 기린, 아사히, 산미겔, 타이거…. 우리에게 익숙한 동아시아 맥주다. 동아시아는 서양에서 맥주가 들어온 지 1세기 만에 세계 최대 맥주 시장이 됐다. 한석정(사진)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계간지 ‘사회와 역사’ 여름호에 실린 ‘식민, 저항, 그리고 국제화:20세기 동아시아 맥주의 확산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이 지역의 100여 년간에 걸친 식민주의와 내셔널리즘, 국제화의 과정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연간 생산량 2000억t에 육박하는 맥주는 세계 1위의 주류다. 현재 세계 1위 소비·생산국인 중국과 지난 100년간 150여 개의 회사가 명멸하며 경쟁을 치렀던 맥주 강국 일본(7위)을 비롯해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등 동아시아는 소비·생산에서 세계 시장을 압도한다. 한국은 여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

논문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맥주는 공통으로 식민주의의 상업적·군사적 기원을 가졌다. 역사적으로 맥주는 낮은 도수 때문에 출정주, 전진주(戰陣酒) 등으로 전장에서 사용됐는데, 동아시아의 수많은 식민전쟁의 과정에서 보급됐다.

중국 최초의 맥주는 1900년 중국을 침식했던 러시아와 독일인들이 하얼빈(哈爾濱)에 공장을 세워 만든 ‘하얼빈 맥주’다. 1930년대 일본의 거대 ‘다이닛폰(大日本)맥주’가 인수한 뒤 나중에 중국 공산당 정부에 넘어가 지금에 이른다. ‘칭다오 맥주’는 독일군이 칭다오(靑島)에 입성하면서 독일과 영국이 합작해 만든 맥주다.

일본은 서양 식민주의의 산물로 맥주를 받아들인 뒤 자신들의 아시아 식민지에 맥주를 ‘융단폭격’했다. 주된 세원(稅源)이었던 맥주가 일본 제국주의의 무기로 전환된 셈이다.

동아시아의 전쟁터와 식민지는 모두 미국과 유럽, 일본 맥주산업의 전쟁터였다. ‘다이닛폰’과 나중에 생긴 ‘기린 맥주’는 중국 시장과 일본 군대의 소비로 돈을 끌어모았다. 패전으로 해외의 공장을 모두 잃었던 일본 맥주는 전쟁으로 다시 일어났다. 점령군 미군과 한국전의 특수가 그것이었다.

이처럼 맥주는 제국주의 국가의 문명 전달자 역할을 했지만, 이후 독립 국가들은 외국 맥주에 대항한 국산품 애용, 국가 전매를 통한 보호 등 내셔널리즘의 우산 아래 성장했다. 대만의 ‘다카사고’, 베트남의 ‘사이공’ ‘하노이’는 정부가 인수해 새로이 출발했다.

중국의 ‘칭다오’는 일본인들이 경영할 당시 장기간 중국인들의 보이콧 대상이었지만, 전후 중국 국민당에 이어 공산당 정부가 인수한 뒤 이번엔 중국 내셔널리즘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제는 국제화가 그 추진력이다. 베트남 호찌민의 맥줏집 ‘지옥의 묵시록’은 미군 출신 관광객을 유치해 베트남전의 향수를 맥주와 함께 판다. 칭다오와 하얼빈 맥주는 옛 유럽적·식민적 기원을 판매전략으로 삼는다.

초국적 기업과의 제휴나 합작을 통한 기술 개선과 해외시장 공략은 말할 것도 없다. 동아시아 맥주에는 지난 한 세기의 변화가 들어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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