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도 최고 스타는 역시 ‘번개’ 우사인 볼트였다. 며칠 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볼트는 “경기에서 나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내 능력과 노력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 것임을 믿으라고 나의 신앙이 가르친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출발선에서 늘 성호를 긋는 가톨릭 의례를 행한다. 골인한 뒤에도 같은 세리머니를 한다. 그의 나라 자메이카는 국민의 60%가량이 개신교 신자이고 가톨릭은 5% 정도지만, 볼트의 종교 세리머니를 탓하는 걸 들은 적은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를 문제 삼진 않았다.

IOC의 올림픽 헌장에는 ‘어떤 종류의 정치, 종교, 인종차별적 프로파간다(선전)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축구의 일본 상대 동메달 결정전에서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덕분에 우리도 익숙한 조항이다. 당시 박종우는 벌금 처벌에 그쳐 메달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사실 이 조항은 올림픽 헌장 중 가장 예민하게 취급된다. 우리는 덜 민감하지만, 특히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등의 종교·정치·인종적 갈등은 추상적인 올림픽 정신뿐 아니라 대회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소소했지만 이번에 리우에서도 피해가진 못했다. 남자 유도 예선에서 이집트 선수가 이스라엘 선수에게 패한 후 규정된 악수나 인사를 하지 않고 매트를 떠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자 유도 선수는 이스라엘 선수와의 경기를 피하려 일부러 기권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면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게 있다. 바로 ‘기도 세리머니’ 논란이다. 이번엔 남자축구 예선 피지전에서 석현준이 골을 넣은 뒤 행한 세리머니가 문제였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이 입장문을 발표해 “올림픽은 개인의 종교를 드러내는 곳이 아니다”며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국제 행사가 특정 종교 선전의 장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지만, 불교와 개신교계 매체들이 공방을 벌였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표팀 선수가 특정 종교를 홍보해선 안 된다’거나 ‘개인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는 식이었다. 종자연은 개신교와 불교의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2004년 만들었고, 그동안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상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역할을 해왔다.

예전에 불교의 상징인 조계사 앞에서 마이크를 동원한 선교를 한다든지, 유명 사찰에 몰려가 소위 ‘땅 밟기’를 한다든지 개신교 쪽 일부 신자의 종교 자유에 대한 침해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시 봉헌’ 발언과 대통령이 된 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한 일은 불교 쪽에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주로 개신교 선수들이 보여주는 ‘기도 세리머니’에 불교 쪽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 해도 IOC가 문제 삼지 않을 수준의 종교적 세리머니에 대해 선수를 나무라는 것은 좀 와 닿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다. 종자연이 매번 반복되는 이 문제에 대해 공론을 모아 누구나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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