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자금 수사 차질 불가피
정부를 상대로 270억 원대 ‘소송 사기’를 벌인 혐의 등으로 청구된 허수영(65·사진)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9일 기각됐다. 롯데그룹 경영 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현직 계열사 사장에 대한 영장은 두 차례 모두 기각됐다. 이에 따라 허 사장의 신병 확보 뒤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고위 임원과 신동빈(61) 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로 옮아가려던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허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요 혐의에 대한 입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제3자 뇌물교부,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허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 사장은 허위 자료를 근거로 법인세 환급 신청을 내 법인세 220억 원 등 총 270억 원을 부당하게 돌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개별소비세 대상을 누락하는 방법으로 13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 협력업체에서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도 있다.
270억 원 규모의 소송 사기 외에도 허 사장의 개인 비리 혐의까지 추가로 영장 범죄 사실에 포함했음에도 영장이 기각돼 검찰 내부의 충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현구(56) 롯데홈쇼핑 사장에 이어 허 사장에 대한 영장도 기각되며 현직 계열사 사장에 대해 청구된 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검찰이 두 달 동안 벌인 수사에서 구속한 사장급 인사는 기준(70) 전 롯데물산 사장이 유일하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6일 강 사장에 대해 롯데홈쇼핑 채널 사용 재승인 로비와 관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허 사장을 구속해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 롯데케미칼 원료 수입 과정에서 이른바 ‘통행세’ 성격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는 검찰의 계획도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수사 전반적인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계열사 사장들에 대한 신병 확보가 잇달아 무산되면서 그룹 오너 일가를 향한 수사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 검찰은 신격호(94) 그룹 총괄회장 등의 수천억 원대 탈세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허 사장의 구속을 계기로 정책본부 임원들과 신 회장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계획이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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