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의 인간론(人間論)과 의론(醫論)은 단순히 한 개인의 기발한 학술적 천착만으로 볼 내용이 아니다. 아직 200여 년도 채 되지 않은 현대의학에서 규명·규정하고 있는 질병의 종류만 해도 이미 수십만 가지를 넘어섰다. ‘의학’이라고 불릴 만한 체계적 질병 대응 전략이 확립된 이후에도 지난 십수 세기에 걸쳐 인간은 수많은 질병에 맞서 투쟁을 거듭해 오며 그 학습의 흔적을 고스란히 유전적으로 상속해 왔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누적되고, (그것을 수용하든 그것에 저항하든) 마음속 깊숙이 각인돼, 그것이 마치 자신의 본능처럼 인식되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에 ‘체질화됐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어떠한 습관이 부지불식 깊게 물들어 본인 스스로 그것을 문제 삼지도 않고, 설령 타인에 의해 문제시되더라도 정작 본인은 왜 문제가 되는지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렇게 체질화돼버린 인간유형은 그 사심(邪心), 태행(怠行)이 쉬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100여 년 전 동무가 세상에 던진 문제의식 역시 이와 같다. 이제 인간의 문제는 더는 이런저런 현상적 분석과 분류, 그에 따른 상황대처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인류사를 구성하는 모든 행위의 근원인 인간 그 자체를 다스리지 않으면, 전쟁과 질병, 빈곤과 기아, 이상기후변화 등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자연적 문제 앞에서 결국 인간은 도태·사멸될 수밖에 없다는 문명사적 경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그 본체(本體)에 대한 보다 정직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질병의 경우, ‘아픔의 작용’이 아니라 ‘아픔 그 자체’에 대해 해명하고, 그 본체를 해부해내는 의학으로 진입해야 한다. 아픔의 작용(현상)들은 그것을 겪고 있는 특정 인간들만의 몫이다. 여기에는 질병을 앓는 주체와 객체가 철저히 분리돼 있다. 하지만 아픔의 본체에는 ‘나와 너’가 따로 있지 않다. 아픔 그 자체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아픔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고, 나 또한 언제든 아플 수 있으며, 지금 내가 아프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배우의 아픔을 감수(感受)할 수 있고, 길에서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라도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인간의 태생적인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한, 아픔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건강론의 현장은 이제부터 우리가 모두 함께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끝>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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