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했던 샐러리맨이 해고를 당하면서 꼬여버린 삶을 그린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폴링 다운’의 한 장면.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이후 일상적인 학대와 해고는 직장 내 다중살인의 주요 원인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샐러리맨이 해고를 당하면서 꼬여버린 삶을 그린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폴링 다운’의 한 장면.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이후 일상적인 학대와 해고는 직장 내 다중살인의 주요 원인이다.

나는 오늘 사표 대신… / 마크 에임스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죽음의 스펙터클 /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두 책은 ‘다중(대량)살인’ 사건을 소재로 비슷한 결론을 내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마크 에임스는 저널리스트이고,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자율주의 운동을 하는 미디어 철학자인 점에서 내용과 깊이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소위 ‘묻지마 살인’으로 명명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보통 조현병 환자라든지 혐오범죄 등 개인적 문제로 정리하기 마련이다. 두 책 모두 다중살인 사건의 범인을 탐색하지만, 그걸 통해 정치·경제적 배경에 초점을 모은다.

미국의 직장과 학교에서 다중살인을 다룬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의 원제목은 ‘고잉 포스털(Going Postal)’이다. 1986년 미국 텍사스주 우체부 패트릭 셰릴이 우체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벌였다. 이 사건 이전에 직장이나 학교에서 총기에 의한 다중살인 사건은 없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유독 우체국에서 몇 건의 사건이 잇따랐고, ‘고잉 포스털’은 ‘격분하다’라는 의미의 신조어가 됐다. 미국인들에게 우체국은 안정된 연방 공기업이었다. 리처드 닉슨 시절인 1970년 우체국의 민영화가 단행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업무량 가중, 해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우체부는 점점 극한직업이 돼갔다. 셰릴은 10분간의 총격으로 15명을 죽이고 6명을 부상시킨 뒤 마주친 여자 친구의 애원으로 살인을 멈추고 자살했다. 그의 장례식에 텍사스주 집배원들은 꽃다발을 보냈고, 동봉한 카드에는 “그가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내몰렸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직장 내 살인사건이 점점 증가했고, 1998년 이후 특히 심해져 2003년에만 7∼8월 두 달간 8건의 총기사건이 발생해 25명이 죽었고 17명이 부상했다. 저자는 사건을 분석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살인범 대부분은 직장에서 한때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오랜 기간 직장에서 학대나 ‘왕따’를 당했으며 이 같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는 건 미국 직장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이기에 침묵하거나 묵살당했다. 또 여타 범죄자들과 달리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동료가 있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1990년대 초부터 학교 내에서 총격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두 학생이 전대미문의 총격사건을 벌인 이후 학내 학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자는 분노 살인이라는 맥락에서 직장과 학교를 비교해 보면 두 환경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데 주목한다. 왕따 가해자가 승자가 되는 문화, 극소수 엘리트만 미래를 보장받는 문화, 하지만 다수는 비참한 삶을 견뎌야 하는 문화이다. 이 같은 문화는 레이거노믹스의 신경영방식과 닮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은 집권하자마자 연방정부 소속 항공관제사노조의 파업을 깨부수고 1만3000명을 해고하면서 소위 레이거노믹스의 출범을 알렸는데, 이후 기업의 이익이 늘어난 반면 정리해고는 대폭 증가했다. 노동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렸고, 이는 학교에서도 같은 양상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다중살인에 주목하는 ‘죽음의 스펙터클’은 저자가 미디어 철학자답게 문제를 철학적으로 짚는다. 제목의 ‘스펙터클’은 ‘전도된 이미지에만 매혹돼 진정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말하는 철학 용어다. 그는 “근대의 사회제도는 시장의 변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마거릿 대처가 나타나 사회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뿐이라고 선언했다”고 상징적으로 말한다. 근대사회를 이루는 윤리적 토대는 부르주아지의 영토적 공동체에 대한 책임, 노동자들의 이익을 공유하는 동료와의 연대였으나, 국토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금융자본과 정보네트워크의 확산은 이를 해체했다.

개인의 주체성도 변화를 맞게 됐지만, 워낙 빠른 변화에 적응은 불가능해졌다. “어머니보다 기계로부터 더 많은 말을 배운, 스펙터클에 매혹된 존재들” 사이에서 다중살인의 ‘괴물’이 나온다고 저자는 본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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