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가계부채를 잡자니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부동산 시장을 살리자니 가계부채가 통제되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은 ‘저금리’지만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계대출+신용판매액)는 1257조3000억 원으로 올 상반기에만 54억2000억 원이 늘어났다. 상반기 증가 폭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가계부채 증가분 중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은 23조6000억 원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수도권 등에서 아파트 분양이 늘어나면서 ‘집단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빌려주는 중도금 대출로 올 상반기에만 11조9000억 원이 증가했다. 집단대출 증가가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인 셈이다.
가계부채 급증을 막으려면 집단대출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25일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대책은 과녁을 비켜갔다. 분양권 전매제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 그동안 검증된 주택담보대출 억제 수단이 빠져 있다. 대신 공공택지 공급 축소, 아파트 신규 분양 억제, 중도금 대출 제한 등 둔탁한 조치들만 포함됐다. 택지공급이 줄어들면 아파트 신규 분양이 줄어들고, 중도금 ‘대출 보증’을 제한하면 대출금리가 증가해 그만큼 집단대출 수요가 감소한다는 논리다. 정부가 소극적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경기 급랭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는 2가지다. 담보대출 규제 강화와 분양권 전매 제한이다. DTI 규제는, 부동산을 소유할 만한 적정소득을 가진 가구에만 대출을 한정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막는 규제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친시장적이다. 또한 주택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득에 맞는 적정가액의 주택을 구입하게 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택담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은행권이 DTI 소득심사를 까다롭게 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비(非)은행, 제2금융권으로 옮겨간 바 있다. 결과적으로 가계부채의 질만 나빠진 것이다. 전매는 당연히 규제해야 한다. 주택에 입주할 의사가 없으면서 전매목적으로 분양을 받았다면 이는 투기적 가(假)수요일 뿐이다. 전매제한은 물론 재당첨 금지, 청약 1순위 자격 강화 등의 순위규제는 강화돼야 한다. 분양권 전매금지가 부동산 경기를 급랭시킨다는 인식은 극복돼야 한다.
가계부채는 부동산시장 이전에 내수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 말 현재 164%로, OECD 23개국 평균(130.5%)보다 30%포인트 이상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봐도, 한국은 2015년 기준 88.4%로 미국(79.2%), 독일(53.6%), 일본(65.9%)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다. 내수가 부진한 것은 그만큼 가계부채가 많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가계부채의 실효적인 출구대책은 소득증대이다. 기술혁신, 규제혁파, 감세, 생산적 투자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성장 페달을 밟아야 한다. 부동산시장 침체 우려가 가계부채 축소의 방패여선 안 된다. ‘소프트 패치’로 가계부채를 줄일 순 없다. 부동산경기는 실물경기의 파생변수일 뿐이다. 금융완화가 아닌 실물경제 활성화로 부동산을 살리는 것이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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