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데모대 천막이 어제 철거됐습니다.”

유병선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4개 단체에서 거의 3년 가깝게 설치해둔 건데 어제 갑자기 철거했습니다. 지금 시청 앞 사진을 보시지요.”

서동수 앞에 사진 서너 장이 놓였다. 한랜드 장관실 안이다. 오후 2시 반, 서동수가 잠자코 책상 위에 펼쳐진 사진을 보았다. 깨끗하다. 항상 데모대 천막이 쳐졌고 머리띠와 구호가 찍힌 상의를 입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다. 그때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다 알아서 철수한 것입니다.”

유병선이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쳤다.

“군부대 이전을 반대했던 3개 지자체에서 반대를 철회한다는 공식 발표를 했지만 정부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통보했습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유병선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국개위 국무위에서 이미 3개 지자체에 대한 행정조치를 끝냈거든요.”

시범 케이스다. 정부는 정부 사업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지자체에 정부 예산 지급을 동결시켰다. 자급 수준 20% 미만의 지자체들이었으니 당장 모든 사업이 중지되고 지자체 내 공무원 월급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국민정서’라는 ‘국개위 지원세력’이 있다. 정부 사업에 지역 이기주의로 반발하는 그 지역의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땅값 떨어질까봐 군부대 이전을 반대했던 지자체들은 이미 땅값이 폭락하고 있다. 아뿔싸, 하고 반대를 철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 서동수가 유병선에게 지시했다.

“그거, 국방부 장관의 발표, 자세히 못 봤는데 한번 보여주지.”

“예, 장관님.”

유병선이 서둘러 방을 나가더니 1분도 안 돼 비서실 직원 둘과 함께 들어섰다. 둘은 벽에 장치된 TV로 가더니 곧 디스켓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화면에 국방부 장관 한상태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목소리가 울렸다.

“군(軍)의 이동과 군 장비의 배치를 일일이 지역 주민의 여론을 듣고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눈을 치켜뜬 한상태가 서동수를 노려보았다.

“남북·평화 공존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 연방이 되려면 몇 달이 남았습니다. 군은 그때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한상태를 보았다. 한상태는 누가 시켜서 저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미사일 기지 한 곳을 설치하는데도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의 방해로 전국이 혼란에 휩쓸렸다. 지금은 달라졌다. 남북이 신의주 특구 이후로 공존 시대가 됐는데도 군은 할 소리를 한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저런 군 지휘관이 있어야 돼.”

서동수가 정지된 화면의 한상태를 보았다.

“저런 지휘관이 있어야 국격이 높아지는 거야. 군인이 정치인에게 휘둘리면 안 돼.”

직원 둘이 물러가고 유병선과 다시 둘이 남았을 때 서동수가 물었다.

“기업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유병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를 대지는 않았다. 사회 분위기 여론조사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서동수는 여론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 인간이다.

그때 유병선이 서류를 들추더니 말을 이었다.

“최만철 위원장이 제안한 ‘참기 운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욕심을 참고 견디자는 갖가지 표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그러나 강요하면 안 된다. 자발적으로 번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신의주 특구, 한랜드, 유라시아 진출, 그것도 부족하다. 내가 할 일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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