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희극인실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합니다.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 기수를 부여받고 몇 년간 방송사에 소속돼 활동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선배 눈치를 봐야 하니 불만이 쌓이기도 하지만, 많은 개그맨이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정글’이라 불리는 방송의 생리를 경험하고 나면, 무섭기만 한 선배들이 사주던 더운밥과 쓴 소주, 동기들과 부대끼며 땀을 흘리던 그때가 그리운 게죠.

27일 한국 코미디의 기틀을 닦은 구봉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일했던 선배를 떠나 보낸 송해가 서럽게 울었고, 함께 활동한 적은 없겠지만 ‘희극인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하늘 같았던 그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유재석, 강호동, 조세호 등도 빈소를 찾았죠.

하지만 적잖은 후배들이 구봉서를 만나러 오지 못했습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26일 개막했기 때문이죠. 전유성 명예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김준호, 김대희 등 이사진은 공식 공연이 시작되기 전 한자리에 모여 검은 리본을 달고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KTX 타고 다녀가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빈소를 찾은 개그맨 선배들은 부산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후배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래, 웃겨라. 여기서 우는 것보다 거기서 관객들을 웃겨야 구봉서 선배님이 기뻐하실 거다.”

개그맨의 본령은 웃음입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줘야 존재의 의미가 있죠. 그래서 속은 울어도 겉은 웃습니다. 지난 7월 부친상을 당한 이영자는 KBS 2TV ‘안녕하세요’ 녹화를 마친 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그는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 이영자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웃으며 녹화에 참여했죠.

요즘 한국 코미디가 위기라고 합니다. 17년 아성을 자랑하던 ‘개그콘서트’가 휘청이고, MBC는 공채 개그맨 모집을 멈춘 지 오래죠. 인기를 얻으면 정통 개그 무대를 떠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이 늘고 있죠.

하지만 이제는 고참이 된 김준호, 김대희 등이 과거 선배들이 그랬듯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4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규모가 커졌고, 후배들을 응원하고자 이경규도 무대로 복귀했죠. 김대희는 잠시 무대를 향한 열망을 접고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 전문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봉서, 심형래, 김병만이 계보를 이었듯 누군가는 선배가 되고, 또 누군가는 후배가 되어 한국의 코미디는 여전히 건강히 자라고 있습니다.

realyong@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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