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림이 하나가 되었을 때, 너와 그림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만나게 될 거라고 약속했었지? 그게 오늘일 줄 너도 미처 몰랐지? 마사코 너의 새 이름 이남덕. 따뜻한 사람. 이제부터 어머니와 함께, 이제부터 조선의 소와 함께, 우리는 하나 되어 살게 될 거야.” 지난 4월 별세한 극작가 김의경의 희곡 대표작인 ‘길 떠나는 가족’ 대사의 한 대목이다. ‘비운의 천재 화가’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이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나 사랑하게 된 일본 여성 야마모토 마사코를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사람”이라며 이남덕(95)으로 바꿔 부르고,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장면에 나온다. 이중섭의 1954년 작품과 같은 제목인 이 희곡은 이윤택 연출로 1991년 초연 당시 ‘그림을 연극적으로 재현한 새로운 기법’ 등으로 서울연극제의 작품상·희곡상·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이는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다른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 또 다른 걸작으로 이어지고, 세계의 문화 자산으로 끊임없이 가치를 확장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에 해당한다. 시인 김춘수(1922∼2004)가 남긴 8편의 연작시 ‘이중섭’도 마찬가지다. 절창 중의 하나인 ‘이중섭 3’은 이렇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또 곽정환 감독의 1974년 영화 ‘이중섭’은 그해 제13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음악상 등을 받은 데 이어, 한국영화진흥공사가 1975년 제28회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한국 대표 작품으로 출품하기도 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15회 이베로아메리카노연극페스티벌에 참가해 관객 전원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던 ‘길 떠나는 가족’을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오는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다시 무대에 올린다. 이를 계기로 이중섭의 예술과 삶이 더 다양한 장르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되고, 그렇게 탄생한 새 작품 또한 세계적인 걸작으로 발돋움하는 예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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