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국내 1위, 글로벌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지난 30일 채권단 긴급회의에서 신규지원 불가가 결정됨에 따라 이사회가 기업회생 절차 신청을 의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외국선사에 대한 용선료의 대폭적 인하 없이는 법정관리가 불가피함을 천명하면서 시한으로 정한 ‘5월 중순’을 100일이나 넘긴 시점이다. 그동안 부산항이 몰락할 위기라면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 지원을 점치며 폭락한 회사채를 매집한 세력도 있었다.

채권단 긴급회의가 소집된 이날 주가도 극심한 투전판이었다. 오전에는 채권단 지원을 기대해 주가가 18.7% 폭등했다. 정오쯤 신규지원 불가 결정이 알려지면서 급락으로 반전했고 24.2% 하락한 1240원에 거래가 정지됐다. 3시간 동안 주가의 등락 폭은 43%였다. 정부가 신속한 결단으로 불필요한 주식시장 혼란을 막았어야 했다.

한진해운 경영권은 고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한 후 부인인 최은영 전(前) 회장이 이어받았다. 해운업의 전반적 위기 상황에서도 경영은 엉망이었다. 감당 못 할 위기에 빠지자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최 전 회장은 남은 주식까지 더 높은 가격에 팔아치우려다 비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로 기소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보이기도 했다. 항공사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은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한진그룹 자체의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조 회장이 사재(私財) 출연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한진해운 부실을 오래전에 진단한 민간은행은 대출금 차환을 제한하고 자금 회수에 나섰으나 산업은행은 대출 비중을 계속 높였다. 한진해운은 부족한 자금은 회사채 발행으로 보충했고 그 과정에서 신용보증기금 보증도 크게 늘었다. 법정관리에 묶인 한진해운 부채 중에는 정부 소유의 산은(産銀)과 신용보증기금 부담이 1조 원을 넘는다. 이번에도 엄청난 국민 혈세를 날리게 됐다. 국책은행이 금융 당국을 뒷받침하기 위해 집중 지원한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의 실패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

채권단이 만장일치로 한진해운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한 것은 외국선사에 약정한 용선료가 너무 높아 채산성이 없고, 1조2700억 원에 이르는 회사채를 보유한 채권자와의 채무조정이 어려운 점이 반영됐다. 법원이 계속기업 가치와 청산가치를 비교하겠지만, 청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한진해운 컨테이너 출발이 취소되고 해상운임이 폭등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한진해운 운송 부문에 대한 대체수단이 정착될 때까지 ‘운송 대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을 향한 운송화물 운임도 오를 조짐이다.

현대상선과의 합병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는 불리한 용선료까지 모두 떠안는 부담 때문이었다. 법원의 신속한 결정으로 운용가치가 높은 자산은 현대상선이 개별적으로 매수해야 한다. 운항 중인 선박에 대한 필수적 비용을 제때 공급해야 한다. 법원이 관리인을 신속히 선정해 긴급자금의 순환통로를 열어야 한다. 외국을 항행하는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정부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한진해운 사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기업 경영권을 무조건 이양하는 데 따른 위험을 확인시켰다. 연기금이나 금융회사 등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주주(株主)집단의 감시체제가 작동돼야 한다. ‘부채비율 200%’와 같은 단세포적 규제의 폐해도 드러났다. 부채비율은 업종과 기업 규모 및 금융시장 성숙도에 따라 달라진다. 무조건 200%로 규제하다 보니 보유 선박을 팔아 부채비율을 낮추고 장기용선계약으로 대체하는 고육지책이 동원됐다. ‘확정 요율 장기 용선계약’은 ‘높은 부채비율’보다 훨씬 더한 리스크 요인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은행권이 업종별 불황을 예측하고 대출금을 줄일 때 국책은행과 회사채 시장은 덥석 떠안았다. 동양그룹 어음부도 사태도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자 계열 종합금융 및 증권회사 창구에서 기업어음(CP)을 무분별하게 발행함으로써 유발됐다. 은행 중심의 채권단 기능이 약해지는 금융시장 변화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금융 당국은 대우조선과 한진해운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금융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 재무 합리화 방안을 신속히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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