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김환기(1913∼1974)의 아내 김향안(1916∼2004) 여사는 그림자처럼 남편을 내조한 여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 이미 딸 셋을 둔 김환기에게 출가하며 이름도 변동림에서 수화의 어릴 적 이름 김향안으로 바꾸고 남은 생을 수화를 위해 살았다. 김환기 사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하면서 미술관을 세워 김환기의 예술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화가였다. 대중적으로 문필가, 평론가로 알려져 있으나 김환기의 사후인 1977년, 1988년 뉴욕과 서울에서 자신만의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녔다.
미술이 전공은 아니었지만 김환기의 동반자로 살며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파리에 체류할 당시에는 프랑스 소르본대 및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으며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환기미술관이 설립자인 김향안 여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8월 30일∼10월 23일)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선 김 여사가 직접 그린 양귀비, 튤립 등의 꽃과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특별하고도 희귀한 작품들이 다수 선보인다. 파스텔톤의 강렬한 색감이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80주년을 기념해 열렸던 20년 전 전시 이후 근래에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너와 나’라는 별칭을 가진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수화 김환기의 뉴욕시대 전면점화 15점도 같이 전시된다. 부부의 작품을 본관 메인홀에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전시해 놓았다.
김 여사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 세월의 흔적이 깃든 유품, 고민의 흔적이 담긴 일기 등도 최초 공개된다. 이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향안의 추억(Reminiscences of HyangAn)’ 스페이스다.
이와 함께 김환기가 작고한 이듬해인 1975년부터 환기재단 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온 김향안의 40년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파리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원했던 19명 작가의 작품도 전시된다.
그중에는 김창열, 김종학, 임충섭 등 한국 추상화를 대표하는 작가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올 상반기에 열렸던 ‘김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의 저변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전시 제목에 예술의 여신을 뜻하는 ‘뮤즈’를 붙인 이유는 김 여사가 평생을 통해 불굴의 신념과 철학으로 김환기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를 독려하고 지원해 에너지 충만한 예술 활동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의 초창기 삶은 결코 밝지 못했다. 1936년 천재 문학가인 이상(1910∼1937)과 결혼했지만 채 1년도 안돼 사별의 아픔을 겼었다. 그리고 1944년 5월에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다.
김환기를 만나 예술 여정의 동반자로 지내며 예술가로서의 그의 삶도 활짝 만개했다. 1938년 매일신보에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 ‘카페와 참종이’와 김환기의 전기 ‘Whanki : Life and Work’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월하의 마음’ 등을 남겼다.
1974년 7월 김환기와 사별한 이후에는 남편의 예술혼을 이어가기 위해 직접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2004년 2월 29일 뉴욕에서 88세로 생을 마감하고 뉴욕 근교의 발할라 묘지, 김환기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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