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서울대 교수,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10여 년간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전직 비서관이 최근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한국증권금융 상근감사위원에 선임되자 ‘낙하산 인사(人事)’ 논란이 일었다. 따지고 보면 세월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낙하산 인사의 폐단은 결코 근절된 적이 없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또 해결하려고 노력하긴커녕 교묘히 조절해 활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매우 낯익은 이슈를 제기한 언론이 청와대로부터 어떤 답변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세력’의 ‘식물정부 만들기’ 음모라며 즉각 직격탄을 날린 것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별다른 반응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아마도 세 가지 중 하나 아니면 모두일 것이다. 공기업도 아닌 상법상 회사에서 한 일이니 청와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과, 이미 선임 절차를 마쳤으니 왈가왈부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 그리고 수십 년 역대 정권 모두가 해왔던 일이니 시간이 지나면 별일 없이 잠잠해지겠지 하는 기대일 것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증권금융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상 공기업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민간 회사의 상근감사 선임은 청와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증권금융 전담기관으로 증권시장 자금을 공급하고, 우리사주 제도를 운영하는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산업은행 등 주요 대주주의 면모를 보거나 청와대 전·현직 관료들의 영향력을 보더라도 이를 관료 낙하산 인사의 영토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주지하듯이 금융 분야 부처와 관변 금융 관련 기관들의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은 정평이 나 있다. ‘외부인 접근금지’라는 팻말만 없지 비전문가들에게는 절대금지구역이다. 그 유일한 예외가 낙하산 인사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사직은 전임자들도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의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자리다. 그런 배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추정이 나온다. 누가 뭐래도 시간은 간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생각. 응답의 필요조차 없다는 투의 이 낯익은 표정에 ‘국민 개돼지론’이 오버랩 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밤낮없이 헌신한 청와대 일꾼에게 퇴임 후 자리를 마련해 그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선의를 고려하더라도, 업무의 영역(전문성)이나 지위(사실상 제2인자 지위 등), 임용절차 등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조건에 맞아야 한다. ‘낙하산 인사’란 범주가 사회적 비난을 사는 것도 바로 그 면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는 대다수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가중시키는 화근이다. 왜 정부를 믿지 못하겠는가. 정부를 불신하는 사람들을 언론이나 악성 선동가들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정부 불신의 가장 주된 원인은 정부에 있다. 역대 정권 누구도 척결 못한 적폐 중의 적폐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려면 낙하시키는 자와 낙하지점 모두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수용하지 않겠지만, 정부·공공부문 인사 전반에 걸쳐 낙하산 인사에 대한 조사와 진단, 대책을 모색할 특별기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의혹이 제기되면 국민은 알고 싶다. 그러나 별다른 응답이 없다. 짜증 나는 폭염 속에 후안무치, 고질적인 불통의 버티기에 진력이 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청와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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