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선박의 절반 이상이 바닷길을 배회하고, 물류가 멈춰 서는 비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는 직원들, 도산 위기에까지 처한 협력사들, 발을 동동 구르는 화주(貨主)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러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상 관련자들의 손해와 희생, 심지어 국민의 부담까지 불가피하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한진 오너가(家)의 모럴 헤저드 일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은 남편 조수호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2007년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부채비율이 1445%까지 치솟자 2014년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을 난파시킨 1차 책임자다. 그럼에도 연봉·퇴직금으로 97억 원, 싸이버로지텍·유수에스엠 등 알짜 계열사와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을 챙겼다. 최 회장이 가져간 기업의 주 수입원은 한진해운 계열사들이고, 사옥 임대료로 거둬들이는 연 140억 원 가운데 40억 원을 한진해운이 낸다. 책임을 지긴커녕 계속 빨대를 꽂고 단물을 빨아온 셈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자율협약 신청 직전에 본인·자녀가 보유한 지분을 처분, 10억 원 손실도 피해갔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는 과정에서 평택컨테이너터미널, 부산 한진해운 신항만, 아시아 8개 항로 영업권 등 핵심 자산이 ㈜한진 등 한진그룹 계열사에 매각됐다. 긴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해운업계에선 배가 기울자 돈 될 만한 것을 추려 빼돌렸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한진해운 사태로 국가 기간물류망과 1400여 직원의 일자리가 위태롭다. 회사와 직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보다 알짜 자산을 빼내 먼저 탈출하려는 전·현 오너의 처신은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이 망해도 기업인은 떵떵거리는 부조리가 사라져야 훌륭한 기업인이 대우 받고, 정의도 바로 선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