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 경제산업부 차장

장면 하나. 중국 대신 ‘중공(中共)’이 더 익숙했던, 한국과 수교하기 2년 전인 1990년 8월 베이징(北京). 함께 간 동료들이 ‘죽(竹)의 장막’에 선물이라며 갖고 갔던 품목 중에 스타킹이 있었다. 중국의 나일론, 면직기술이 낙후됐으니, 한국의 앞선 ‘고탄력 스타킹’을 좋아할 것이란 주변의 친절한 권유를 이행한 결과다.(그 선물을 실제 줬고 받기도 했다고 들었다.) 조선족을 만나서는 1회용 국산 라이터도 선물이라고 주곤 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고 오래전부터 외국인 투자조차 옥석을 가려 받는 중국 땅에서 26년 전 있었던 일이다.

장면 둘.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제2의 중국’으로 불리며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생산·투자 거점으로 부상한 베트남을 최근 다녀왔다. 2012년 이후 4년 만이다. 중국, 베트남 모두 사회주의국가면서 똑같이 1992년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변화무쌍한 모습이었다. 경제발전의 동맥이 펄떡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시내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출퇴근 행렬은 과거 중국, 대만 등의 경제 활력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베트남은 정치적 안정 속에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한 각국의 해외투자가 급증하면서 투자업종도 봉제, 섬유 등 노동집약적에서 휴대전화 등 고부가가치 쪽으로 점차 고도화하고 있다고 했다. 4년 전에 3100여 개 수준이었던 한국 진출기업은 지난해 말 4000개를 넘었다. 현지의 한 기업 주재원은 “베트남 경제가 1986년 아시안게임 직후의 한국 경제 규모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9950만 명에 달하는 인구와 값싼 노동력, 수출 호조도 베트남엔 강력한 무기다. 전체 교역규모는 지난해 기준 3280억 달러로 한국의 3분의 1수준에 달한다.

한국 경제가 기적으로까지 평가받은 단면의 하나에는 자전거에서 곧바로 마이카 시대를 열 정도로 광폭이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추진 동력은 급격히 쇠락하고 있다. 극도의 혼란상을 표출한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물류대란 소동만 해도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목전에 두고 왜 10년째 경제 시스템이 미로(迷路)를 헤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구조조정의 원칙과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교하지 못한 행정·금융시스템과 무대응 능력,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과감히 걸었던 기업가 정신은 이미 사라진 채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오너 리스크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성장 정체란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사이, 후발신흥국은 맹렬히 추격해 턱밑까지 숨통을 죄어 오고 있고 산업, 경제, 기업 경쟁력의 척도인 핵심기술력의 우위 역시 이미 사라졌거나 곧 상실될 상황이다. 경제발전 5개년 식이 아니더라도 ‘경제쇄신 5개년 마스터플랜’을 짜서라도 경제·산업구조의 혁신과 질적 고도화를 추진하지 않는 한, 오토바이를 건너뛴 한국 경제의 신화는 퇴행이 불가피한 형국이다. 앞으로 베트남에도 쫓기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 이미 인구도, 땅덩어리도 우리보다 훨씬 많고 큰데.

horizon@
이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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