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정치부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시욕이 강하거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 6일 뜬금없이 정권교체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자신감의 근거로 거론한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상 최초로 야권 후보가 풍부해 대선을 이끌어가는 상황이다. 둘째, 더민주가 혁신되고 강해졌다. 셋째, 4·13 총선에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50대 투표에서 야권이 여당을 앞섰다. 넷째, 지난 대선에서 문 전 대표 자신과 당이 모두 준비 부족이었는데 이제는 총동원 체제가 됐다. 다섯째, 더민주가 영남·충청·강원에서 선전, 제1당이자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이 됐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나 총선의 표면적 결과만을 놓고 보면 타당할 수도 있다. 갤럽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문 전 대표는 지난해 2·8전당대회 이후 실시된 각종 조사에서 대부분 1위 자리를 지켰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10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장 이후 1위 자리를 내줬지만 2∼4위는 문 전 대표, 안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의 차지였다. 반면 새누리당은 4·13 총선 참패 이후 그나마 선두그룹에 근접했던 후보들이 줄줄이 하위권으로 밀리면서 ‘도토리 키재기’에 ‘오리무중’ 상태다. 4·13총선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 여당이 집권 도중에 원내 1당 자리를 내준 것은 선거 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는 ‘껍데기’만을 근거로 자신감을 갖게 됐거나 심지어 오만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면 문제다. 과거 ‘여의도 대통령’이라고 불리면서도 대선에서 두 차례 고배를 마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길을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4·13총선의 승리는 문 전 대표 본인은 물론 문 전 대표가 이끌던 정당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에 반발한 안 전 대표와 호남지역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분당 사태를 겪었고 개헌저지선(100석)을 얻기도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했다. 그런 더민주가 승리하는 데 일등 공신은 ‘옥새 파동’까지 일으킨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친노패권주의·좌편향에 빠진 당을 일신한 김종인 전 대표였다. 그럼에도 문 전 대표가 8·27 전당대회를 통해 등장한 ‘친문(친문재인) 체제’의 당을 ‘혁신되고 강해졌다’고 평가했다면 분당 사태와 총선을 통해 명백히 확인된 민심을 읽지 못했거나 대권에 눈이 멀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4·13 총선의 민심은 기존 정치권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에 가까운 정치개혁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다.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기존 정치로는 국가와 국민에게 미래가 없다고 외친 것이다. 그래서 ‘더민주가 수도권을 싹쓸이하고 영남·강원 등 전국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껍데기 밑에 감춰진 진실은 ‘더민주가 호남에서 배척당하고 새누리당이 영남에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등장 역시 국민의당 자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기존 양당체제에 대한 심판의 상징이다.

문 전 대표가 내놓은 ‘대선 전망’의 치명적 약점은 민심, 즉 ‘시대정신’을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거론한 대선 후보 숫자나 50대의 투표 성향과 같은 정치공학적 지표는 대선의 종속변수에 그칠 뿐이다. 더민주가 친문 체제로 굳어지면 선거에 당조직을 동원하는 데는 유리할 수 있어도 민심을 담아낼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두권 대선 후보 한 사람 없는 새누리당이, 뿌리를 따져보면 영남과 보수란 토양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새누리당이 호남 출신의 ‘무수저’ 이정현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당 대표가 호남과 김대중·노무현정부에 사과하고 야당의 국회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대해 긍정적인 논평을 내놓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더구나 도토리 후보들의 이념적·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못해 혼란스러운 수준이고 이들은 철저히 당심과 민심에 의해서만 평가받는 예선을 거칠 방침이다. 혁명에 가까운 정치혁신을 요구하는 민심이 15개월 후에 어떤 정당을 선택할까. 문 전 대표는 냉정해져야 한다. 지난번에 얼마 차이 나지 않았는데, 5년 더 준비했으니 그 정도 격차 못 메우겠느냐고 생각한다면 ‘이회창의 실패’를 그대로 되풀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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